오리무중(五里霧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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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애초 오리무중(五里霧中)은 도술의 산물이다.

후한(後漢)의 순제(順帝) 때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학문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도술(道術)에도 조예가 깊었다. 하지만 벼슬 욕심은 없었다. 심지어는 임금이 여러 번 사람을 보내어 등용하려고 해도 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의 명성은 높아졌다. 마치 신비주의가 대중의 궁금증을 자극한 셈이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그들의 극성스러움에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자 산속으로 잠적했다. 그런 다음 도술로써 자기 거처 주변 ‘사방 5리 정도를 안개로 덮어’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안개가 ‘오리무(五里霧)’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가운데 중(中)을 덧붙였다.

▲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도의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오리무중 상황이다. 제주도특별법상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권리와 의무를 지닌 획정위원마저 전원 사퇴했다. 결국 모든 것이 돌고 돌아 원점으로 왔다.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명하다. 직선로를 택해 정면돌파할 수밖에 없다. 앞서 우회로가 수월할 것 같았지만 비례대표 축소 반발 등 암초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이를 뛰어넘을 의지와 배짱도 없었기에 회군(回軍)은 쉬웠다.

직선로는 조속히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가동해 현행 29개 선거구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는 우회로보다 첩첩산중일 수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된 선거구제 개편에 어느 도의원들이 선뜻 동의하겠는가. 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으며 당선과 낙선이 걸린 문제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선 도의원들이 지역 대표성을 띠고 있는 만큼 주민들과 유권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획정위도, 3자(도ㆍ도의회ㆍ제주 출신 국회의원)도 눈앞의 직선로보다 멀리 있는 우회로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좌불안석이요, 뒤로 주춤하면 백 리 낭떠러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해 현행 선거구대로 선거를 치렀다가는 도의원 선거 자체가 무효될 수 있다는 법률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오리무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두렵지만 걸어서 나오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의 안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지 옅어지지 않을 것 같다. 걸어서 나와야 한다. 오리무중 도술을 풀 수 있는 키는 지금에선 도의회에 있다. 현행 선거구에서 나누고 붙이고 해야 한다. 유불리를 따지다 보면 모두 안갯속에서 위험해진다. 향후 선거구획정위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결의하면, 해당 지역 주민과 유권자들도 서운함을 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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