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을 위한 작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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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지독한 더위에 입맛을 잃었다. 매일 끼니를 만들어 내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벌겋게 넘실거리는 불꽃 앞에서 물수건을 목에 걸고 전사처럼 주방 일을 한다. 옛 어머니들은 삼복더위에 아궁이 불을 때서 그 많은 가족의 먹거리를 장만했다. 그 시절에 비해 지금은 한없이 편한 세상인데도, 하루하루가 고역이라고 주부들은 하소연이다.

점심 한 끼 밖에서 해결하자고 나섰다. 웬만한 곳은 줄을 서 기다려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북적대고 있다. 방학에다 휴가차 찾아온 관광객들로 소문난 맛집은 문전성시다. 시원한 물회 한 그릇 사 먹기가 기다리는 일로 고역이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더위 못지않게 소란스럽다. 곁자리에선 집에서도 그렇고 외식도 예삿일은 아니라고 중얼거린다. 여유롭게 맛을 음미하던 시절이 그리울 지경이다.

종업원들의 바쁜 손놀림에 말을 걸기도 눈치가 보인다. 테이블에 내는 찬은 왜 그렇게 가짓수가 많은지. 달게 먹는 것도 있지만 남거나 젓가락도 대지 않은 채, 구색을 채웠다 그대로 나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 주요리가 일품이면 구태여 많은 찬이 필요 없다.

그릇과 함께 뒤죽박죽 되돌아 나가는 음식물쓰레기를 보면, 못 먹어 배고프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게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래전 주문식단제를 시행하다 흐지부지된 일이 있다. 새로운 정책엔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찬반 의견을 조율하며 얻은 선택은, 시행하며 보완을 해 최선이 되도록 해야 한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임은 물론, 구인난에 허덕이는 업소도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제주는 지금 쓰레기와의 전쟁이라 할 만큼 심각하다. 관광 성수기로 매일 배출되는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로 악취까지. 가뭄으로 물 부족 사태까지 겹쳐, 폭염으로 헉헉거리는 제주의 모습은 불편한 것뿐이다.

며칠 전 시어머님 기일이었다. 윤달로 인해 찜통더위 한복판에서 제를 지내게 됐다. 음식은 간결하고 맛깔스럽게, 대신 가짓수를 줄이려고 머릿속을 굴린다. 예전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간소화되긴 했으나, 구색은 갖추어야 예가 아닌가.

장만하는 것 못지않게 끝나고 나면, 설거지를 비롯해 뒤치다꺼리가 더 힘들다. 얼마 전부터 우리 집안에선 제물을 올리고 난 후, 뷔페식으로 상차림을 한다. 식탁에 음식을 차려 놓고 큰 접시와 수저만 준비해 놓으면 각자 갖다 먹는다. 어른이라고 대우하는 것도 없고 아이가 따로 없다.

큰 집에는 일이 많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손아래 질부들의 의견에 기꺼이 동참을 한 건 한 세대 위 여자들이다. 우리가 겪어 온 힘든 일을 후대에게 물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파격적인 일에 남자 어른들이 시대의 흐름을 빨리 읽었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임은 말할 게 없다.

매번 상을 차릴 필요가 없다. 오는 대로 스스로 챙겨 먹는 간편함, 설거지가 간단하다. 무엇보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질 않아서 좋다. 먹다 남아오는 음식, 먹기도 비위생적이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죄스럽고 아까운 게 제사음식 아닌가. 파제까지 남는 시간에 오랜만에 여유 있게 정담을 나누는 시간이 됐다. 이런 모습이 제삿날 조상님께 자손이 드리는 진정한 ‘집안의 화목’이 아닐까 한다.

부엌일에 치여 고생하는 주부들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제주는 제사 문화가 유별하다. 달라져야 한다. 개혁은 작은 변화에서 오는 것으로 큰 변화를 위한 물꼬 트기다. 형식보다는 정성이다. 일에 얽매여 마음이 떠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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