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100년 전 제주 모습 생생 '성읍민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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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초가에 주민들 거주...국민관광지로 각광
▲ 성읍민속마을 내 중요민속문화재 71호로 지정된 한봉일 가옥(초가) 전경. 19세기 초에 지은 집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유서 깊은 이 마을은 유형·무형의 문화유산과 옛 촌락의 형태가 잘 보존돼 있다. 79만㎡ 면적의 마을 전체가 1984년 국가지정문화재다.

이 마을은 1423년(세종 5년)부터 군·현제가 폐지되는 1914년까지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였다.

문화재로 지정된 옛 초가는 조일훈·고평오·이영숙·한봉일·고상은 가옥 등 모두 5채다.

▲조일훈 가옥은 그의 할아버지가 1901년에 건립했다.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목거리(헛간채) 및 대문간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구성됐다.

제주에선 보통 대문을 설치하지 않고 골목길에서 집까지 좁은 진입로(올레)를 두지만 이 집은 올레 대신 대문간을 따로 배치했다.

원래 객주집으로 소·말이 많아서 곳곳에 말을 묶어 두는 시설물과 물을 먹이는 돌구유를 뒀다. 개인 소유의 말방아(몰방애)가 있을 정도로 부농의 집이었다.

▲한봉일 가옥은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안거리와 밖거리, 대문간으로 구성됐다. 개조된 부분이 별로 없어서 전래적인 가옥의 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안거리는 작은 방이 있는 3칸 초가로 한라산 남쪽지역의 전형적인 가옥의 특색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재래식 온돌인 ‘굴묵’(아궁이)으로 통하는 다른 문을 두지 않고 난간 쪽으로 출입하도록 했다. 진입로에 올레를 만들었고, 팽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공간을 조성했다.

▲고평오 가옥은 그의 증조부가 1829년(순조 29)에 건립했다. 안거리, 밖거리, 헛간채 및 대문간이 갖춰진 ‘ㄷ’자형이다.

안거리 상방문에는 이른바 ‘호령창’이라는 작은 문이 달려 있는데 이는 산남지역에만 전해오는 가옥 형태다.

밖거리는 현청 소재지 당시부터 면사무소가 표선리로 옮겨질 때까지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면서 도내 다른 집과는 구조가 다르다. 즉, 상방이 집 한가운데에 위치하지 않고 동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 성읍마을 주민들이 새봄을 맞아 띠로 지붕을 교체하는 모습.

▲이영숙 가옥은 20세기 초 정의고을의 여인숙으로 쓰였던 일이 있어서 주민들은 ‘여관집’으로 부르고 있다. 안거리는 산남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3칸 집이다.

정지(부엌) 공간이 비교적 좁고, 안쪽에는 작은 구들이 있다. 상방을 가운데 두고 구들과 고팡이 붙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5채의 전통 초가 외에 성읍민속마을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273채의 초가가 있다. 6채는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귀포시는 새봄이 오면 273채 초가의 묵은 지붕을 걷어내고 띠(새)를 깔 수 있도록 2만4000단의 띠를 매년 공급해주고 있다.

논농사가 드문 제주에선 볏짚을 구하기 어려워 벼과식물인 띠로 지붕을 잇고 있다. 이를 위해 서귀포시는 17곳의 초지 12만9275㎡에서 띠를 생산하고 있다.

성읍민속마을에는 현재 587세대, 1355명이 옛 고을에 살며 전통을 이어가면서 국민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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