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에 깃든 오름과 잎새로 이어도를 인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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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 홍진숙 作 김영갑갤러리 정원에서.

두모악 도체비꼿

 

강 영 란

 

헛되이 꼿이나 피워 놓았습니다

 

어스름 너머 푸른 별이

그대의 안부로 저물어 갑니다

 

기다리면 오지 않는게 기다림 일까요

 

꼿이나 몇 송이 피워놓고

그 저녁을 걸으면

기다림은 내 심장의 빛깔이 되어갑니다

 

두모악이라 했습니다

 

그대의 영혼이

그곳을 넘어갈 때

미처 못 따라간

별하나가

산막 둘러 고즈넉이 핍니다

 

▲ 이혜정 시 낭송가가 김영갑의 작품 ‘내 마음의 풍경’을 낭송하고 있다.

제주를 지극히 사랑하여 사진 하나로 이어도를 찾아낸 김영갑.

 

그가 수없이 찾아가고 한없이 기다리고 찍어낸 사진들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상향을 본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제주에는 존재한다며 한 장의 사진으로 그 힘을 찾고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굶주림 속에서도 쌀보다 필름을 먼저 사고 필름을 사기 위해 막노동을 하면서 이어도를 영혼에 인화한 사진가.

 

두모악엘 간다.

 

그가 찾아 헤맸던 이상향의 둥근 곡선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그가 보여주는 새로운 제주 앞에 우리는 숙연해지고 아파지고 열렬하게 되는 것이다.

 

▲ 액자 퍼포먼스 모습.

루게릭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는 투병하는 내내 삼달분교를 손수 개조하여 2002년 여름에 사진 갤러리를 열었다.

 

두모악 갤러리는 소박하다. 높이 올려진 것 하나 없이 딱 맞춤한 눈높이에 작은 돌멩이를 쌓아 올리고 옛 ‘삼달국민학교’ 학교 팻말도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오종종한 토기 인형들조차 꾸밈없는 모양대로 돌담 위에 얹혀 각자의 방식으로 사색하고 있다. 그가 떠난 뒤에도 뒤꼍에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곱닥헌 항아리나 나무 사이 듬성듬성 놓인 돌덩이 하나까지.

 

깨끗하고 정갈하여 이곳을 맡은 박훈일 관장님의 정성이 느껴진다. 삐져나온 풀 한 포기 없이 일정하게 자란 잔디하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잎새들 마다 초록 건강함으로 싱그럽다.

 

갤러리 안은 하늘과 구름을 담은 ‘두모악관’과 바람과 오름을 표현한 ‘하날오름관’으로 나뉘어 있고 작가의 생전 모습을 영상물로 만날 수 있다.

 

6년의 투병 끝에 48세의 나이로 이어도로 간 그는 이곳 갤러리에 유해가 뿌려졌다.

 

두모악의 바람 속에, 냄새 속에 그가 있다. 허영숙 사진가님이 내 손을 슬쩍 잡아끌면서 남들이 못 보는 걸 보여준다며 한 모퉁이 돌담 울타리 아래 수북한 담쟁이를 걷어 올렸다.

 

비밀의 화원 문 입구이듯 거기 자그마하게 놓인 김영갑의 싸인이 세월 속에 깊은 잠을 자는 듯하다.

 

▲ 제주국제관악제 집행위원장인 이상철 음악감독의 지휘로 바람난장 가족들이 ‘이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펼쳐진 우리의 난장은 아름다웠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굴 가득 미소 짓고 행여 불편이 없을까 조용히 뒤를 쫓는 관장님의 따뜻한 마음 씀에 감사 인사가 오간다.

 

이혜정님의 시 낭송으로 김영갑님의 작품 ‘내 마음의 풍경’이 연신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뚜렷하게 들려왔다.

 

손희정님의 액자 퍼포먼스도 곁들여져 액자 안에 한 사람씩 들어앉아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아닌 척 제주의 자연이나 오름에 피어난 꽃 한 송이 인척 가면을 쓰고 능청스러워 보기도 했다. 이상철님의 지휘 아래 때 이르지만 ‘가을밤’ 노래까지 손뼉 치며 합창하고 나니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세는 그가 보이는 듯도 했다.

 

그는 갔어도 그가 남겨둔 사진은 남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수없이 찾아가고 한없이 기다리는 것이 당신에게는 무엇인지를.

 

 

 

글=강영란

그림=홍진숙

사진=허영숙

음악·감독=이상철

시 낭송=이혜정

퍼포먼스=손희정

 

※다음 바람난장은 12일 오전 11시 윗새오름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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