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천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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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속언에 ‘밥이 보약’이란 말이 있다. 병에는 약보다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 하여 이르는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에게 밥은 주식이다. 자고이래 ‘밥은 허연 쌀밥’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흥부전』에도 굶주려 있는 가운데 “어머니, 나는 육개장에다 허연 쌀밥을 좀 말아 주시오.”란 아주 간절한 대목이 보인다. “제 밥도 못 찾아 먹는 주제에.”라 해서 제가 차지하는 모가치란 뜻도 있다.

재료에 따라 가짓수도 잘도 많은 게 밥이다. 보리밥, 꽁보리밥, 쌀밥, 멥쌀밥, 찹쌀밥, 햅쌀밥, 이밥, 기장밥, 메밀밥, 수수밥, 옥수수밥, 조밥, 강조밥, 차조밥, 피밥, 녹두밥, 콩밥, 팥밥, 잡곡밥, 오곡밥, 감자밥, 고구마밥, 나물밥, 콩나물밥, 무밥, 굴밥, 조개밥, 쑥밥, 김밥, 톳밥, 굴밥…. 놀랍다.

아잇적에 질리게 먹던 게 보리밥과 조밥, 고구마밥과 무밥이었다. 조밥에는 강조밥, 차조밥이 있었는데 차조밥은 풀기가 있었으나, 모래알같이 마른 강조밥은 그 가난에도 목으로 넘기기 거북했다. 바다에서 나는 톳에 좁쌀을 섞던 톳밥은 ‘눈 밝은 닭 주웜직이(주워 먹게)’ 좁쌀 찾기가 어려웠다. 피밥은 피 빛깔이 희어 쌀밥 기분이 감돌았지만, 입에 넣으면 껄끄러워 조악(粗惡)했다. 고구마밥은 고구마 천지로 그나마 명색 밥이라 했다.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 그런 걸 가리고 따졌을까. ‘밥’ 자가 붙은 걸 앞에 받아 앉는 것만으로 입이 벌어졌으니까.

그래도 육지, 잘 사는 양반가에는 고봉(高捧)밥이란 게 있었다. 그릇 위로 수북이 높게, 꾹꾹 눌러 담은 밥이다.

양반 집에선 예로부터 식사습관이라는 규범 같은 걸 지켰다. 고봉으로 담은 밥의 그릇 전까지만 먹는 것. ‘전’이란 밥그릇의 위쪽 가장자리 시울 넓게 헤벌어진 부분을 가리킨다. 진즉 그릇 가장자리 윗부분만 먹는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그릇 위로 보이는 데까지만 먹고 그 밑으론 남긴다는 뜻이다.

양반은 그 이상 더 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교육시켰다. 남은 밥은 긴히 쓰일 데가 있었다. 상을 물리고 나면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 몫이 됐던 것이다. 남은 밥과 반찬을 문간방에 들이밀면, 그들도 위아래 서열에 따라 차례대로 그릇을 비웠다.

만약 배고픈 상전이 그릇 밑바닥까지 몽땅 먹어 치우면 노비들은 끼를 굶어야 할 판이다. 불평을 쏟아냈다. “어이구 양반이랍시고 종은 사람 취급도 않네. 밥 굶기는 걸 보니 이 집구석도 망조가 드는군!”

이런 글이 있었다. ‘밥상 앞에서 엄마를 가운데 두고 오뉘가 다툰다. 밥그릇을 바꿨다며 옮기기를 반복한다. 왜 그런 것 갖고 다투느냐는 엄마의 성화에 눈물까지 흘려 가며 싸운다.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밥이 많은 걸 원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다.

골고루 먹어야 키도 크고 몸매도 좋아진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 첫째 이유다. 밥을 다 먹어야 수박과 아이스크림을 주겠다는 엄마의 명이 두 번째 이유. 밥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먹고 싶고, 뚱뚱해진다는 밥을 많이 먹는 게 싫어서, 밥이 적은 쪽을 택하려 한다. 내가 보기엔 누구의 밥이 많은지는 구분이 잘 안 된다.’

남의 밥사발이 높아 보인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돼 버린 걸까. 밥을 잽싸게 그리고 적게 먹어야겠다고 덤비는 아이에게서 오늘의 풍요를 실감한다.

이 오뉘에겐 곁에 밥을 꼭 먹이려는 든든한 엄마가 있다. 한데도 요즘 들어 밥이 주식의 자리에서 뒷전으로 밀리는 것만 같다. 격세지감을 금하지 못한다.

이것만은 서구화 물결에 떠밀려선 안 된다. 그 옛날, 가난을 뿌리친 게 꽁보리밥이었다. 밥을 먹어야 폭염도 견뎌 낼 수 있다. 밥맛이 없으면 입맛으로라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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