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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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내가 사는 동네 대로변은 낮보다 밤이 더 흥청거린다. 불빛이 화려한 거리엔 여느 도시 못지않게 사람들로 왁자하다. 가게마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풍경을 보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실감 못 할 정도다.

시끌벅적하던 취객들이 돌아간 골목길에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다. 아귀 같은 게 뒤에서 머리채라도 잡아당길 것 같아 솜털이 돌기처럼 일어선다. 그림자 없는 어둠, 달리는 자동차의 질주가 괴물 소리처럼 요란하다.

하도 어지러운 세상이라 밤에 마음 놓고 다니기가 조심스럽다. 예전엔 상가 간판에 밤새 불을 밝히는 게 전력 낭비라고 여겼지만, 이런 현실에선 오히려 고맙다. 어둠 속에서 밝은 불빛을 보면,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움츠렸던 어깨가 펴진다.

최근에는 CCTV를 설치한 곳이 많아졌다. 어디를 가던 그 시선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다. 처음에는 고양이 눈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지켜보는 게 불편하고 신경 쓰였다. 앞을 지나노라면 괜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긴장이 됐다. 그러나 초기의 사생활 침해라는 여론도 이젠 잠잠하다. 경찰이 다할 수 없는 부분을 대신한, 시민들의 안심 지킴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

한낱 생명 없는 기계에 안전을 의지하는 세태,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다. 차를 몰고 어디를 가든지, 꼼짝없이 내 행적이 고스란히 모니터에 찍히는 것에도 신경이 둔해졌다.

차에 오르면 정수리 위에서 “고객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안전운전하세요. 녹화를 시작합니다.” 블랙박스에서 어김없이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이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좁은 공간에서 내 행동과 말이 고스란히 저장되고 있다는 게 거북해 불편했다.

묘한 것은 운전하는 자세가 은연중 조심스러워진다는 점이다. 타성에 젖어 자만했던 습관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외부로부터 오는 감시 역할뿐 아니라, 스스로 감시하는 운전이 된 거다. 차에 오르면 보호자가 곁에 있기라도 한 것 같아 믿음직해 든든하다.

도로에서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교통법을 지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소시민이 꼭 지켜야 할 덕목이요, 사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사거리 모퉁이를 돌자 편의점 불빛이 환하다. 모두 잠자리에 든 시각, 24시 편의점은 잠들지 못하고 있다. 내부가 환히 보이는 가게 안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실루엣, 잠시 걸음을 멈췄다.

집중해서 책장을 넘기는데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르바이트 학생이거나, 아직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일지 모른다. 구석 의자에선 밖으로 시선을 둔 채 컵라면을 먹는 남자가 보인다. 고단했던 하루의 시장기를 이제야 해결하는지. 아니면 부지런히 뛰어야 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요기인가. 남들이 편히 쉬는 시간에 일거리를 맡은 밤 벌이가 오죽하랴. 낮과 밤을 바꾸어 사는 사람들의 일상처럼 고단한 게 있을까.

밤새 속탈이 났다. 상비약이 떨어진 줄 모르고 있었다.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해 혹시나 하고 소화제를 사러 나왔던 길이다. 아침까지 기다리려면 고생이 될 뻔했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의 일상 속에 일어나는 소소한 주변의 일들을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눈을 돌리면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들도 적지 않다. 그런 고마움을 미처 못 본 채 지나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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