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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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교수 중어중문학과/논설위원

지난 정부에서 저질러진 국정논단은, 그저 “이게 나라인가? 이러고도 나라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말인가?”라고 뇌까리는 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제 다행히 모든 것이 드러나, 그런 정권을 축출시킨 것만으로도 국민은 희망에 차있다.

분위기가 그러하니, 사실 새 정부는 그렇게 잘 할 필요도 없다. 단지 지난 정부가 했던 일을 뒤집기만 해도 국민들은 환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 정부는 신선하기도 하다. 청와대를 개방하거나, 심지어는 걸어서 출근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직접 브리핑도 하고….

국민들은 이런 나라님의 모습에 마치 동네 아저씨를 만난 듯 친근하게 느꼈고, 그가 항상 우리 옆에서 우리의 고충을 듣고 우리의 벗이 되어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였다.

좋다! 그런데 이것들이 단지 보여주기 위한 행위였을 뿐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말인가?

능력을 기준으로 인물을 찾는다면, 지천에 깔린 것이 인물 아니겠는가?

해마다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각종 어려운 시험을 치러 사회로 진출하는데, 그 중에는 반드시 1등이 있을 터, 각 분야에서 몇 년에 걸쳐 최고였던 자들만 모아놓아도 차고 넘치는 것이 인물일 것이고, 학교의 우등생이 꼭 사회의 우등생인 것은 아니라고 하니, 시험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긴긴 세월을 단 한 가지에 심취하여,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도 많고 많을 인재는 보지 못하고, 왜 주위의 몇몇 사람만 쳐다보는가?

앉혀놓으면 말을 잘 듣고 아바타로서의 역할을 잘할 것 같아서인가? 그렇다면 뭇사람의 의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 한 사람의 의견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사람의 과거 행적과 그의 친구를 보면, 앞으로 그가 펼칠 미래가 보인다.

당당한 사람은 결코 숨기거나 반칙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 스스로 떳떳하기 때문에 속이고 반칙하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어떤 사람이 선거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정치인이 각종 비리나 추문에 연루되거나, 교수가 남의 업적을 빼앗았다면, 한 때 젊은 시절의 호기라거나, 그 때는 모두 그랬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감싸주지 않을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고기도 먹어본 자가 잘 먹기 때문이다.

누구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것은 남의 머리를 빌리면 된다. 그러나 머리를 빌리는 것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최고는 아니라도 그나마 자기 분야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와도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굳이 다른 사람을 제압하려 들지 않지만, 남이 먼저 알고 존경한다.

반면 실력이 없는 사람은, 남이 자기의 무지를 알까 두렵고, 남이 묻는 것조차도 자기를 시험한다고 생각하여 묻거나 따지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을 잘 듣는 자만 옆에 두며, 입으로는 민주적이라고 하지만 항상 독선적이며,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권위를 내세워 상대를 제압하려든다.

그래서 나라님은 물론이고, 각종 단체나 학교의 장을 뽑을 때도, 반드시 그 사람의 실력과 그 사람을 둘러싼 주위 사람을 살펴보아야 한다. 한 번 뽑아 놓으면, 무지한 자가 무지한 자와 어울려 사회를 망쳐놓아도 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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