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비자운동의 대모로서 한국소비자연맹을 창립한 고(故) 정광모 회장은 빨간 상의와 하얀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다. 그가 남대문시장에 나타나면 마치 불자동차를 보고 길을 비키는 사람들처럼 장사꾼들이 서둘러서 저울추를 바로잡았다. 이리저리 가게를 둘러보다가 불현듯 다가가서 물건을 고른 후 반드시 저울에 달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십중팔구 저울의 비정상이 드러나곤 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무수한 현장 경험에서 비롯된 예감의 적중이었다.

어느 날 늦은 저녁에 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대~한민국” 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회장님, 지금 어디 계세요?”“시청 앞 광장이지!” “아니, 이 늦은 시간에 거기는 왜요?” “이탈리아와 16강전을 벌이고 있잖아!” “그냥 TV로 보면 되잖아요?” “현장감이 없잖아!” “현장요?”

“그래, 역사의 현장. 여기는 지금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어. 현장에 나와 봐야 현상을 읽을 수 있는 법이야. 현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거든!”

이토록 현장에 철저했던 정광모 회장은 소비자가 걸어온 전화를 직원에게 넘기는 법이 없었다. 직접 들어보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깔끔하게 해결해주었다. 식품·화장품 등 불량제품이 극성이던 시절, 불량기업들에 직접 레드카드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킨 소비자운동. 그것은 바로 그의 빨간색 열정과 은백색 결단력이 만들어 낸 현장주의의 성과였다.

결국, 그가 생애 마지막까지 그토록 애썼던 소비자의 권익 향상 운동은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플러스가 되었다. 현장에서 이루어진 통찰과 결단이 올바른 정책의 도화선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던 셈이다.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제주 도정이 다양한 해녀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천대받아 왔는지를 비로소 털어놓는 해녀 삼춘들의 사회적 위상을 자연유산의 왕관 이상으로 높여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중에는 현장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탁상행정의 산물이 보인다. 이를테면 해녀의 노령화와 해녀 수의 감소가 해녀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함에 따른 신규 해녀 증가대책이다.

즉, 신규 해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촌계 가입비를 보조해주고, 한 달에 50만 원씩 3년 동안 초기 정착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이는 해녀가 되고 싶은데 어촌계에 가입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부담스럽거나 소득이 낮아서 해녀가 되는 게 주저되는 상황을 반영한 조치로 이해된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다르다. ‘기존 해녀들로 구성된 어촌계가 만장일치로 신규해녀의 가입을 동의해주어야만 해녀가 될 수 있다’는 어촌계의 총회규약이 도리어 문제다.

사실 바다의 환경 변화와 오염으로 인해 자원이 감소하면서 해녀들의 수입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비교적 해녀수가 많거나 해녀들의 물질소득이 가계소득 대비 중요한 곳은 신규 해녀가 위협요인이 된다. 오히려 신규 해녀를 받아주는 어촌계에 소라와 전복의 종패를 더 많이 공급해주는 등 인센티브가 현실적이다.

이 사례처럼 전문가들이 탁상에 모여서 그럼직한 정책을 만들어 내더라도 막상 현장에 적용하면 아우성이 발생한다. 현장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보고 응답하지 않은 탓이다. 전략보다 소통이 중요하단 얘기다.

지금 제주는 현장의 소통이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사람, 탁상행정가에게 레드카드를 보여주는 인재가 필요하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곳곳에서 그 현상을 통찰할 수 있는 리더가 아쉬운 때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지적한 ‘어제의 슬로건, 약속, 문제의식이 여전히 대중적인 담론의 주제가 되어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시대’, 바로 역사의 경계선이자 사회의 대전환기에 정작 우리도 서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