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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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BHA국제학교 이사, 시인/수필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할머니와 딸 쯤 되어 보이는 두 여자가 차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오자 할머니가 손들어 세운다.

 

“제주시 가는데 타면 되나요?”

 

“잘 보고 세우세요. 뭐, 훈련시키는 겁니까?” 두 여자는 황당한 모습으로 급히 오르던 발을 거둔다.

 

또 며칠 전 버스 안이다. 한 중년의 여자 관광객이 묻는다. “기사님, 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려요?” “15분입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보통 1시간 10분에서 20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으리라 생각하며 차창 밖 신록에 빠진다. 그런데 20분쯤 지나자 아주머니가 다시 묻는다. “터미널 다 왔어요?” 기사님은 묵묵부답이다. 뒤에 앉은 내가 거든다. “터미널까지는 1시간 15분 정도 걸립니다. 한 시간 더 가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아주머니는 황망한 듯 눈을 감아버린다.

 

요즘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봉사 활동 하는 곳이 동쪽이어서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강렬한 아침의 햇살, 날카로운 오후의 석양을 피하려면 버스가 제격이고 또 편하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이런 일도 있었다. 차가 급정거했다. 뒤에 앉은 아가씨의 트렁크가 엄청난 속도로 운전석 가림막을 들이받고 뒤집혔다. 또 조금 가다가 다시 다른 승객의 트렁크가 빠른 속도로 운적석으로 질주해 부딪혔다. 그러자 기사님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밖의 버스 트렁크에 갖다 넣으라고 한다. 두 여자는 트렁크를 들고 가서 버스 트렁크를 열고 실었다. 가사님은 후면등으로 밖을 내다 본다. 그 트렁크들이 사람과 충돌했다면 누군가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한두 달 출퇴근하며 겪었던 버스 풍경들을 기억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거의 20년 전 캐나다에서 겪었던 작은 경험이 생각났다.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연수받을 때의 일이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무조건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갔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회화도 익히고 문화도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한 번은 좀 늦게 출발하여 버스 종착역까지 가서 내렸다. 그런데 기사님이 나를 불러 다시 버스를 탈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무료 환승권을 발급해 주었다. 몇 걸음 가는데 다시 불러 세웠다. 이 차가 마지막 버스이고 20분 후에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에 맞게 와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한 시간 정도 도심의 시골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후에 왔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다. 친절을 베푼 기사님의 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 기사님들은 격무와 많은 손님들로 친절과 배려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친절하고 자상하다. 얼마 후면 제주도내 모든 버스가 준공영화된다고 한다. 국제관광도시로서 바람직하고 또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유익한 제도처럼 보인다.

 

도민은 물론 기사님들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 모두 좀 더 친절하고, 배려심 깊고, 전문성을 지닌 도민으로 거듭 태어났으면 하고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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