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덕1리 해녀들의 빨간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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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논설위원
역(役)은 국가 권력이 백성들의 노동력을 수취하는 제도이다. 한데 조선시대 제주는 다른 지방보다 면적이 좁고 인구가 적은 데 반해 상대적으로 잡역(雜役)이 많았다. 이에 제주사람들은 군역은 물론 온갖 노역을 감당해야 했다. 그중 가장 꺼렸던 게 소위 육고역(六苦役)이었다.

그것은 바로 미역 등을 따던 해녀(海女), 전복과 물고기를 잡던 포작(鮑作), 말을 기르던 목자(牧子), 귤을 재배한 과직(果直), 관청의 땅을 경작한 답한(畓漢), 진상품을 운반하는 뱃사람 선격(船格) 등을 말한다. 이 가운데 유독 힘든 게 포작과 해녀 등이었다. 바다 속에서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녀들의 물질은 고되다. 일단 스쿠버다이빙 슈트보다 훨씬 무겁고 두꺼운 고무옷을 입어야 한다. 수경과 태왁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특별한 기구가 없다. 산소통 하나 없는 사실상 맨몸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평균 수심 10~20m 이상의 바다에 들어가 1회에 1~3분씩 자맥질하며 해산물을 채취한다.

해녀는 한 번에 4~5시간 동안 물질을 한다. 물살에 몸살이 나는 시간이다. 때론 거친 파도와 변화무쌍한 바다를 헤쳐야 한다. 추운 겨울에도 반복적으로 잠수해야 한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속담이 회자되고 있겠는가.

▲해녀 일은 상당한 체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달리 얘기하면 체력이 떨어지면 안전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럴 경우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도내에선 최근 10년간 해마다 평균 7~8명의 해녀가 조업 중 심장마비 등으로 숨졌다.

사망한 해녀들은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 해녀다. 그 요인은 고령화에 따른 체력 저하, 무리한 조업, 능력 이상의 과욕 등 복합적이다. 해녀들 스스로 안전의식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수칙 실천도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 어촌계의 안전 대책이 주목을 끌고 있다. 어촌계가 정한 하루 3~4시간의 물질 작업시간이 종료될 즈음 빨간 깃발을 해안가 게양대에 걸어 이를 알린다는 거다. 그러면 해녀들은 서둘러 조업을 끝내고 물 밖으로 나오게 된다.

만약 작업 시간을 어기면 벌금이 부과돼 위반 사례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를 통해 귀덕1리 어촌계는 해녀들의 안전과 해산물 고갈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다고 하니 그저 놀랍다. 이쯤되면 ‘생명수호기’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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