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연기(送別煙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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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수필가

회자정리(會者定離). 담배와의 오랜 인연도 그렇게 끝났다.

 

반평생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담배와의 단교(斷交)는 쉽지 않았지만, ‘자의반 타의반’의 선택이요 결단이었다.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조금은 편치 않은 마음으로 종합검진을 받았다.

 

환갑을 넘기며 눈에 띄게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몸이, 과연 여생(餘生)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오장육부들은 물론 특히 줄담배로 시달렸을 폐(肺)는 안녕한지 궁금해서였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검진이었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대부분의 장기(臟器)와 신체기능, 거기에 폐기능도 양호하다는 소견이었다. 의사인 동생도, 그동안 내 삶의 이력으로는 기적 같은 결과라며, 축하의 너스레를 떨었다. 아직은 쓸만하다는 내 몸이 그토록 대견하고 감사했다. 차제에, 기특한 몸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다짐했다. 남은 삶에서는 몸이 싫어할 일들이나 식습관을 자제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금연치료를 신청했다.

 

사실 금연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도처에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애써 딴청을 피우며 중독의 질곡에 안주했었다.

 

무엇보다 세상에 나온 첫 손자가, 금연에 대한 강력한 결단의 동기를 제공했다.

 

금쪽같은 손자 앞에서, 노인 냄새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담배에 찌든 악취를 풍긴다면 할아버지의 체면을 구길 노릇이다. 게다가 손자와 입맞춤이라도 할라치면, 피가 나게 양치를 하고, 가글링까지 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흡연자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냉대와 따가운 시선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다.

 

무모한 담배값 인상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담배를 피우는 나 자신에게 모멸감이 들었고, 담뱃갑에 인쇄된 섬뜩한 흡연경고 사진들도 흡연욕구를 반감시키기에 충분했다. 구석진 흡연장소를 찾아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일도, 더 이상 못할 짓이었다.

 

얼마 전, 미국 LA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도, 금연 결심에 일조(一助)를 했다.

 

UCLA에서 유학하는 아들 내외의 기숙사는, 실내외 전체가 금연구역이었다.

 

때문에 부자(父子) 상봉이 끝나자마자 아들은, 흡연은 반드시 기숙사 밖에 나가서 하셔야 한다며, 정문 스마트키를 건네 주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키를 받고, 체류 열흘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청승맞게 홀로 정문을 여닫으며, 궁색한 흡연을 이어가야 했었다.

 

어느덧 금연의 시간들이, 석 달 남짓 이어지고 있다. 치명적 흡연욕구가 치밀어 힘들 때도 많지만, 주전부리들로 딴청을 피우며, 달콤한 유혹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있다.

 

대신 몸과 마음 평화롭고, 삽상(颯爽)한 심호흡 갈맷빛으로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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