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난 바람이 불어도 모슬포는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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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모슬포 ‘삼다도 노래비’
▲ 홍진숙 作 삼다도 소식.

그딜 누겐들 모르크냐

                                     - 이애자

 

흙냄새 비린 냄새 땀 냄새 버무려져

 

웬만한 세파쯤이야 사람 사는 내음이려니

 

살 냄새 자리 젓 냄새 익는 밤이 짧더라

 

 

물 봉봉 가슴 봉봉 먹먹한 날 어찌 없으랴

 

물허벅 장단이면 어느 장단을 못 맞추랴

 

대정 땅 대정몽생이 반 치키고 반 하시하더라

 

 

역풍에 쓸려 와서도 북향으로만 돌아앉더니

 

탱자나무 가시바람 유배 땅 그 바람도

 

추사의 붓 끝에 멈춰 세한도로 돋보이더라

 

 

후덕한 모슬봉이 치마폭 인심이더라

 

송악산 엎딘 내력 등만 밟고 가더라

 

“또 옵서” 하지 않아도 모슬포가 그립다더라

 

▲ 손희정씨가 이애자 시인의 시 ‘그딜 누겐들 모르크냐’를 낭송하고 있다.

모슬포 바다가 평화롭다. 뙤약볕 아래의 난장을 위한 연출인 듯, 주인 쫓던 주황 눈빛 태왁들도 잠시 눈길을 보탠다.

 

‘삼다도 소식’은 이곳 바다를 배경으로 탄생한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인기가수 황금심이 부른 노래다.

 

‘육군제1훈련소’가 들어서며 ‘군예대’가 창설된다. 근대 노래의 발상지인 군예대,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이곳에서 6.25 전선으로 투입될 훈련병 위문공연과 군가 보급, 피난민의 설움을 달랜다. 그중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곡으로 ‘삼다도 소식’은 당시 히트곡이다.

 

▲ 스물일곱 번째 바람난장이 모슬포 삼다도 노래비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현충하·지기택씨의 색소폰 연주 모습.

도시계획사업으로 ‘군예대’ 건물이 철거에 이르자 대정역사문화연구회 등 지역 주민들의 건물 복원 청원에 하모3리 산이물공원에 ‘삼다도 소식 노래비’가 육군제1훈련소 창설 63주년에 맞춰 제막식을 갖는다.

 

이곳 노래비는 난장 멤버인 미술팀장 김해곤 미술가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군인의 철모와 제주해녀를 형상화시킨 어울림이 평화 구원의 메시지다. 노래비 앞에 놓인 뮤직벤치에 앉으면 배경음악인 양 흘러드는 추억의 곡을 감상하며 하염없는 바다를 바라보아도 좋겠다. 산이물공원 지킴이인 해풍에 샤워한 짙푸른 소나무들이 가끔씩 청해주는 초록바람에 더위를 씻는다. 마주하는 앞바다만큼 넉넉한 품이다.

 

손희정의 낭송으로 모슬포 시인 이애자의 시 ‘그딜 누겐들 모르크냐’ 중 ‘역풍에 쓸려 와서도 북향으로만 돌아앉더니’에 잔상이 길다.

 

노래비 앞에서 현충하, 지기택님의 ‘삼다도 소식’ 색소폰 연주에 잠시 바닷속 해녀가 되어본다. 소라도 건져 올리고 미역도 따고….

 

이 곡을 이상철 음악 감독의 지휘로 색소폰연주와 난장 합창에 바다물결도 호흡을 맞춘다.

 

방파제 위로 올라선 김정희가 ‘곱게 저승 가져시냐’ 이애자의 시 낭송에 슬몃 벗어놓은 검정고무신이 가지런하다. 1950년대의 일상적 풍경 속으로 훅 데려다 놓는다.

 

‘바람난 돌에 한마디’, 각자 적은 후 다른 참가자의 것을 읽는 이벤트다. 옆에 선 ‘돌빛나 예술학교’ 젊은 조환진 교장선생님은 어떤 글귀를 남길까 궁금해진다.

 

한 마디씩을 등에 업은 작은 자갈돌의 변신들, 제 몫을 마쳐 바구니로 들어앉자 김순이 선생님 왈, “세월 흐른 뒤 난산리로 보러오시게”에 박장대소다. 어느덧 손희정의 퍼포먼스가 난장의 고정 코너로 자리 잡혀 은근히 끝날 즈음이면 다음이 기대된다.

 

난장을 파하고 카풀 다섯 명의 여자가 잘 익은 자리젓 내 날 오일장을 누비던 한때, 가격 흥정도 걸작이다.

 

오일장을 나오는 길, 태왁 앞장세운 물질은 진행형이고 숨비소리로 채워지던 바다다.

 

‘“또 옵서” 하지 않아도 모슬포가 그립다더라’던 이애자 시인의 싯귀가 따라온다.

 

글=고해자

그림=홍진숙

사진=허영숙

시 낭송=손희정·김정희

소프라노 색소폰=지기택

테너 색소폰=현충하

음향·감독=이상철

퍼포먼스=손희정

 

※다음 바람난장은 8일 오전11시, 애월읍 유수암리 342-9번지 ‘홍윤애 난장’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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