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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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진로에 대한 것입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그리기 같은 무엇을 상상하는 창의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웹툰 작가(인터넷 만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웹툰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함으로써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데 웹툰 작가가 되려면 미술 실력과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미술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엄청난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가 버리고,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기초생활수급가정으로 살아가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학원 얘기를 꺼낼 엄두도 못 냅니다. 동의하시지도 않습니다. 회사원이나 통역사 같은 직업을 가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웹툰 작가의 꿈을 접을 수가 없거든요. 저의 꿈을 위해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어요. 제 꿈을 응원해 주세요. 저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꾹꾹 눌러쓴 손편지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제 중1이라는 한 학생의 사연이다. 3쪽에 담아낸 깨알 글씨 뒤로 여운을 남긴 것은 여백에 그린 친구의 초상이었다. 연필이 수천 번 닿은 선이 묘사해 놓은 섬세한 솜씨가 놀랍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소외계층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기적 같은 선물을 안겨 준다. ‘기적의 편지’, 배려와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자신의 소원을 담아 손편지를 써서 보내면, 그 소원을 이뤄 주는 사업이다. ‘JDC와 함께하는 작지만 소중한 소원 이루기’를 돕는 기적의 편지. 말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이 사업이 201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제주국제공항면세점 수익의 일부를 어려운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이다.

편지 심사를 맡았다. 지역아동센터·대안학교·보호시설에 기대면서도 아이들의 고운 꿈으로 우리의 미래는 열려 있었다. 정성껏 써 부쳐 온 219통의 편지가 꿈을 잃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아 울림으로 온다.

갖고 싶은 것들도 다양하다. 보청기, 자전거, 휴대폰, 기타, 노트북, 안마기, 피아노 같은 값비싼 것이 있는가 하면, 책꽂이, 장난감, 책가방, 책걸상, 구명조끼, 농구공, 축구화 같은 일용품들도 있다. 한복과 수의사복은 흥미로웠고, 학원 수강비를 원하는 아이도 있다. 중국어를 공부해 가이드가 되는 게 꿈인데, 공부하려면 단어장이 필요하다는 실용주의자도 있다. 강아지가 더럽혀 엉망이 돼 버린 아빠 구두를 사드려 힘이 되고 싶다 한 사연엔 진즉 가슴이 아리다.

폰으로 몇 마디 해 버리거나, 메일 몇 줄로 할 말을 날려 버리는 세상이다.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이렇게 삭막한 세상이다. 손으로 온기를 전하는 만큼 손편지는 따스하다. 또한 너와 나 사이를 인정의 강물로 흐른다.

JDC가 제주사회복지협의회에 의뢰해 시행되고 있는 이 사업에 지원되는 후원금 연 5000만원은 참 값진 돈이다. 생각해 볼 일이다. 어려운 형편에서 꿈을 키우려는 아이들의 정성 어린 편지에 담긴 소원을 기적의 편지가 이뤄 준다면, 그만큼 기억에 남을 선물이 어디 있을까.

심사 결과가 나왔다. 고가품을 원하는 아이들도 혜택이 돌아가는 쪽으로 고려하면서, 수혜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115명에게 그들이 원하는 선물을 주게 됐다. 50%를 웃돌았으니 참 다행스럽다.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는 없다. 기회를 놓친 아이들은 일 년 뒤 다시 편지를 써 행운을 붙들 일이다.

욕심내고 싶다. 이런 좋은 일을 일 년 두 번쯤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기적의 편지’가 제주사회에 어둠을 몰아내는 희망의 빛이 됐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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