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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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논설위원
6ㆍ25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상대적으로 아이가 적게 태어났다. 전쟁으로 살기 힘들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탓이다.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아이를 집중적으로 낳기 시작했다. 이때 출생한 아이를 ‘베이비부머’세대라고 한다. 통상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통칭한다.

그 중심엔 1958년생 개띠가 있다. 사상 처음으로 한 해 출생자가 90만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뒤 신생아 수는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58년 개띠’가 베이비부머의 상징이 된 건 그래서다. 베이비부머는 우리나라 인구의 15%(약 740만명)에 육박한다.

▲‘58년 개띠’는 특별 대명사다. ‘57년 닭띠’, ‘59년 돼지띠’ 등 많은 띠들이 있는데, 왜 58년 개띠만 그럴까. 아마 베이비부머의 절정기에 태어나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친 게 가장 큰 요인일 게다. 격변의 현장을 체험하며 우리 현대사의 변화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도 그 사유에 해당될 게다.

소설의 한 구절처럼 58년 개띠들은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였다. 그건 숙명이었다. 학창 시절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사회에 나가서도 늘 좁은 합격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몸에 배일 수밖에 없었다.

▲58년 개띠들은 이른바 ‘뺑뺑이(무시험 입학)’의 첫 세대이다.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본고사가 면제된 거다. 반면 한정된 정원의 대학을 가기 위해 역대 가장 높은 경쟁률로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그때가 1977년이었다.

대학에선 유신과 휴교령에 맞서야 했고, 병역 기간 중엔 10ㆍ26과 12ㆍ12사태,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다. 직장 새내기 시절인 1987년 6ㆍ10 민주항쟁 때엔 넥타이를 맨 채 거리에 나섰다. 한창 일할 나이인 1997년엔 IMF 구제금융이 터졌다.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퇴출의 고배를 마셨다.

▲이처럼 부침이 심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서일까. 58년 개띠들은 집단적 유대감이 강하다고 한다. 웬만한 조직에서 ‘58년 개띠’ 모임이 구성돼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오죽하면 어디 가서 띠를 소개할 때 58년 개띠라고 하면 반갑다는 반응이 나왔겠는가.

우리 사회의 중심축을 이뤘던 58년 개띠들이 내년이면 만 60세가 된다.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에 모두 공직에서 은퇴한다.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올해부터 공로연수나 명예퇴직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이들의 퇴장으로 공직사회에 세대교체 바람이 한창이다. 세월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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