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병영에서 6·25전쟁이 발발한 후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로 이용됐던 석조 건물 전경.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는 광복 이후 국군 창설과 6·25전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군사 유적으로 꼽히고 있다.

지휘소는 태평양전쟁(1941~1945년) 당시 일본군이 건립했다. 일본 해군 오무라(大村) 대좌가 사용하면서 ‘오무라 병영’이라고 불려왔다. 일본의 항복으로 이 석조 건물을 방치됐었다.

1946년 향토방위 임무를 맡은 육군 제9연대가 이곳에서 창설됐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고, 이듬해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뺏기는 ‘1·4후퇴’로 정부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제주도는 최후방이자 반격을 준비할 최후의 거점이 됐다. 1951년 1월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창설한 이유다. 이 건물은 훈련소 지휘소로 사용됐다.

지휘소는 1층 석조건물로 건축면적은 637㎡다. 현무암을 다듬어 쌓고 시멘트로 벽을 마감했다.

지붕은 슬레이트로 축조됐다. 건물의 중앙에는 현관이 있고 대칭적인 구조로 돼 있으나 내부는 공간면적은 서로 달리 한 비대칭으로 설치됐다.

이는 공간의 용도와 기능에 맞춰 칸막이로 나눴기 때문이다. 내부에 공중 화장실이 있는 것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형태다.

훈련소 전체 면적은 198만㎡(60만평)에 달했으나 시설이 부족해 천막을 치고 신병을 수용했다. 전체 훈련 병력은 많게는 7만명에 달하면서 숙영지는 안덕과 화순까지 퍼졌다.

 

   
▲ 육군 제1훈련소 내 장병 숙영지와 참모부 건물들.

이로 인해 전쟁 당시 대정읍은 거대한 천막도시이자 군사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장병들의 기초 훈련기간은 12~16주였으나 전선이 위험한 시기에는 3주로 단축됐다. 짧은 기간에 정예 병사를 육성하기 위해 훈련의 강도는 높았다.

피난민들은 훈련소 주위에 몰려들어 고달픈 삶을 이어 나갔다.

육군 제1훈련소는 문화·예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훈련소 전속악단인 군예대(軍藝隊)가 이곳에서 창설해 유호, 박시춘, 황금심, 구봉서 등 연예인들이 참여했다.

군예대장을 맡은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 ‘삼다도 소식’은 모슬포 바다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라고 시작되는 이 노래는 1952년 군부대에서 만들어졌지만 대중가요가 됐다.

 

   
▲ 육군 제1훈련소에서 소총훈련을 받고 있는 장병들 모습.

훈련소에는 이승만 대통령 등 정부 고위 인사들과 밴플리트 미8군 사령관 및 연합국 장성들이 수시로 방문해 훈련을 참관했다.

육군 제1훈련소는 1956년 문을 닫을 때까지 5년 간 50만여 명의 장병을 배출했다.

문화재청은 건군 60주년을 맞은 2008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맞춰 옛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를 등록문화재 제409호로 지정, 근대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