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들이여,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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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 전 탐라교육원장/수필가

‘실제 전쟁을 겪어 봐야 참혹함을 알죠.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잊지 말자.’ 도내 유일 호국영웅 K 씨가 6·25전쟁 67주년을 맞이해 던진 뼈 있는 한마디 화두다.

호국 보훈의 달 6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국가유공자며 그 가족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그 뜻을 함양코자 정한 달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본래의 취지가 점점 뇌리에서 지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예전엔 공무원들은 술과 가무를 자제하고 정숙한 분위기속에서 지내도록 정부에서 훈시했었다. 학교에서 호국 보훈의 달에 행하던 웅변대회나 백일장도 눈에 띄지 않는다. 6·25가 공휴일이던 것도 옛일이다. 그러다 보니 호국 보훈의 달이 조금 퇴색된 느낌이다.

현충일을 며칠 앞두고 서귀포 충혼묘지를 찾았다.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제주지부 봉사단에서 정비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따뜻한 햇살, 푸른 바다가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산자락에 호국영령들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고이 잠들어 있다. 병사의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깨어나 관등성명을 댈 것 같은 적막감이 든다. 스치고 지나는 바람 소리, 지절대는 새소리만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준다.

한 기 한 기 수건으로 묘비(墓碑)를 닦으며 이름과 생년월일을 더듬어본다. 꽃다운 나이다. 부모 형제를 버리고 왜 이들은 이 골짜기에 영면하고 있을까. 살아 있는 내가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에 대한 대책엔 손이 미치지 않는다.

신문을 보다 깜짝 놀랐다. 내년 2월부터 이병 월급이 30만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참전 명예수당은 월 22만 원 그대로다. 나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도, 한 달 약값도 못 미치는 돈으로 고통스러운 극빈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제주국립묘지 조성 사업은 2009년부터 국책 사업으로 추진됐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차일피일 미루어 2020년에야 조성된다고 한다. 어느 사업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찬밥 신세다. 정부에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쳤던 전우들의 마음을 외면하는 게 못내 아쉽다.

전우들은 한 분 한 분 이슬처럼 사라지고 있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싸울 것인지 자못 걱정스럽다.

현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평화만을 부르짖고 있다. 북쪽에서는 핵을 개발하고 연일 미사일을 쏘아 대도 딴청이다. 사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북에서는 무인기로 성주까지 날아와 사드 포대 10장을 촬영했다고 한다.

대화도 중요하고 소통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서로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한쪽의 힘이 약하면 끌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힘을 기르는 일이다. 그게 국방의 토대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이란 말이 있다. 공자가 한 말이지만, 안중근 의사도 감옥에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자신의 철학을 이와 같이 피력했다. 호국영령들이야말로 이를 몸소 실천한 분들이 아닌가.

나라를 온전히 수호하는 것만이, 호국영령들이 영면하는 길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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