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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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개역(미숫가루)은 여름철 옛 제주의 별미였다.

 

장마와 더위가 계속되는 계절인 만큼 먹거리에도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이다.

 

6월초 제주의 돌담밭은 노랗게 물들인 보리를 분주히 거둬들이고 있었다.

 

건조를 마친 통보리가 솥에 불을 집히고 얼마간 지났을까, 열을 받자 이리 튀고 저리 튀고 난리를 피운다. 어머니는 새까맣게 타지 않도록 불을 조절하면서 짚솔로 원을 그리며 젖는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장마로 이어질 듯 오후 서너 시가 지났는데도 그칠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하굣길 올레로 들어서는데,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 고소한 맛과 향기에 군침이 돈다. 부엌 앞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의 얼굴은 땀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미숫가루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참이다.

 

밥에 비벼 먹을까?

 

냉수에 타마실까?

 

드르륵 드르륵 맷돌이 갈아내는 소리다. 암 맷돌의 아가리로 볶은 통보리를 한 줌씩 넣고 갈기 시작한다. 암 맷돌과 수 맷돌의 충돌과 마찰이 만들어 내는 가루가 도구리로 떨어져 앉는다. 맷돌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마주 앉아 터무니를 잡고 돌리신다. “이연 이연 이여동호라, 이여방애라그네 고들배지엉” 할머니가 선창에 나서자. 어머니는 뒷소리로 이어받는다.

 

구성진 소리, 부드러운 가락이 두드러진다. 식량 사정이 어려웠던 살림살이 모습이 가슴을 적신다. 고레 고는 소리는 맷돌을 함께 돌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사설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내가 맷돌 노래에 깜빡 잊고 있었네.

 

오늘은 별식. 할아버지와 할머니 웃어른에게 계절음식을 만들어드리는 날이다. 소싯적에 들은 얘기다. 며느리가 제철에 미숫가루를 만들어 시부모에게 드리지 않으면 ‘보리 가루도 한 줌 주지 아니 한 며느리’ 라고 꾸중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마음쓰임이 돋보인다. 미숫가루는 여름철에 손님을 대접하는 일도 많았고, 이웃에게도 고루 나누어 주었다. 따뜻함이 오가는 마음에서 서로서로 정이 깊어간다.

 

요즘 일부 가정에서는 미숫가루의 진가를 깨달은 것일까? 현미, 보리, 콩, 찹쌀, 깨…. 여러 가지 몸에 좋다는 곡물을 볶아 가루를 내어 여름철 건강식품으로 식구는 물론이고 손님대접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에 정성이 빚은 향기만 못한 것 같다. 아이스크림, 청량음료나 건강식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미숫가루가 요즘 아이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고 있다.

 

왤까?

 

출가한 큰 누나도 예처럼 계절이 바뀔 때면, 미숫가루를 만들어 친정집을 찾아왔던 철 갈이 일도 내려놓았다. 고소하고 향기로운 맛과 얘기가 마음 깊이자리한 아름다운 추억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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