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료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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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택 의사/논설위원

광복이 되면서 의료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의사, 치과의사, 의생, 한지의사(限地醫師), 검정의사의 구분이 생겼다. 이들 22명이 병원(도립제주의원), 의원(제주) 3곳, 공의(지방 19), 보건기관 1곳에 종사했고, 약국은 10곳에 불과했다. 의사 1인당 도민 1만3320명을 감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정 치하인 1947년 6월 1일 제주도의사회가 발족했다.

오창흔·문종혁·박영훈 선생의 주도로 의술향상과 의료보국을 목표로 출범하여 이 해에 중앙회 산하단체로 인준됐다.

제주도치과의사회는 1954년에야 독립하였다.

1952년 한의사제도가 시작하자 제주도한의사회는 1962년에야 발족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도립병원, 정화의원, 보건소, 정의원 등에서 진료를 받았다. 도민들에게 명의로 알려졌던 의료계 선배들 가령 홍순억, 문종후, 정태무, 고영은, 김병식(치과), 강치명, 송윤원, 고태영, 이동일, 홍용하, 현학송, 허권, 장시영 선생들은 모두 타계하셨다.

물론 아직도 건재하여 현역으로 진료 중인 원로 의사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전에 자주 보았던 제주도 4대 풍토병 가운데 폐결핵은 아직도 존속하고 있지만, 흡충증(간·폐디스토마), 상피병, 아메바성간농양은 1970년대 말로 사라졌다.

그 대신 노인성질환과 생활습관병, 각종 사고가 늘고 있다.

1946년 제주도의 의료사정은 전국에서 가장 낙후했다.

8·15 광복과 미군정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의사들은 호열자(콜레라)를 막아냈고 도민들의 위생수준을 높였다. 4·3사건의 와중에 의사 4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6·25사변 때에는 개원의들이 군의관으로 차출됐고 배급제로 약제를 공급 받았다.

개원의들은 군병원에서 흘러나온 약제를 많이 썼다. 1990년대까지도 개원가에는 주사기를 비롯한 의료기구를 물에 끓여 소독하여 썼고, 에테르를 솜에 적셔 마취했다. 소독약은 석탄산이나 아카징키, 국소마취제나 시약은 직접 조제해 사용했다.

1990년대부터야 의약공급이 원활해지고 의료기관은 시설확충과 첨단의료기 도입 등으로 현대화하였다. 지금은 전국 수준 이상으로 발전했다.

2017년 5월 말 현재 제주도내 의사 수는 1116명(남 915명, 여 201명)에 달한다. 종합병원 514명, 의원 548명, 공중보건의 22명이다. 휴직의는 32명이다. 의사 1인당 인구수는 593명(인구 66만1190명)으로 줄어들었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고 1999년 의약분업 등의 파란곡절을 겪으면서 고난과 발전의 역사 속에 도민과 더불어 애환을 함께 했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병원 경영을 먼저 생각하게 되면서 제주의료는 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소신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의사는 전문직종의 사명과 그 역할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의업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함으로써 시작된 비극이었다.

현실적으로 의사만큼 자기 자신이나 가족보다도 오로지 다른 사람의 병치료와 건강을 위해 봉사하는 직종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의사들이 봉사도 하지 않고 자기네만 살아가는 존재로 오도되고 있다.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과 1차의료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지금 정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화·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의사의 권익을 보장해주는 한편, 봉사하는 의사의 모습이 어울리는 의료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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