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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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국제PEN한국본부제주회원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롯데시네마 상영관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관람했다.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지만, 처음 본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신문의 뉴스를 보면서, ‘노무현입니다’를 꼭 관람하고 싶었던 터다. 상영 일정을 확인해 본 것은 잘한 일이었다. 당일까지 상영을 마감한다고 해서였다. 운이 좋았다.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영화를 봤기에 그렇다.

국회의원, 부산시장의 선거에서 네 번이나 지지율 2%의 만년 꼴찌로 탈락한 전 노무현 대통령이다. 인생에 뒤바뀜은 여러 번 있기 마련이지만 전 노무현 대통령처럼은 아주 드물 터이다. 그 꼴찌를 극복하고 대선 후보 1위가 되는 것은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은 물론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당히 이긴 노무현.

인권변호사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네 명의 변호사를 찍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요주의 인물은 노무현.

부산상고 출신으로 가방끈이 짧은 것을 콤플렉스로 삼았던 노무현.

나는 감정이 풍부하고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손등으로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던 것은 처음이다.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목숨’, ‘길 위에서’의 이창재 감독, 연출인 ‘노무현입니다’를 앞지르는 다큐멘터리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애초에 100만명 관객이 몰릴 것은 감독도 기대하지 않았던 바다.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최대의 화제작 ‘노무현입니다’가 열흘 상영에 100만명을 돌파했을 때 모두 놀랐다.

노무현이 전 대통령이 되기까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몰랐던 일대기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번번이 낙선했던 만년 꼴찌 후보 노무현이 2002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도입된 새천년민주당의 국민 참여 경선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도시에서 치러진 대국민 이벤트가 있었다.

쟁쟁한 후보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제주 경선 3위, 울산 1위, 그리고 광주까지 석권한 지지율 2%의 꼴찌 후보가 전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결로 서거하는 날, 나는 이곳 친구와 제주의 휴양림 ‘사려니 숲길’ 10여㎞를 끝내고 셔틀버스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상했다. 몇 시간 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자결로 서거했다는 소식.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의 자결은 이유가 어찌 됐든 비통함을 안겨줬다. 대통령이 자결하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자결이 아니면 다른 방도가 없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었어요.” 유시민(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 자원봉사자)의 말이다.

“화를 내는데 그 밑에 슬픔이 보이면 영구 중독돼서 못 빠져나오죠.” 배길상(노무현의 거의 모든 선거에 참여한 선거 전문가)씨의 회고다.

“변호사님은 매일 청원경찰에게 15도로 인사를 해요.” 노수현(1982년부터 노무현 운전기사로 근무)씨의 말이다.

“대통령 가운데 가장 국민에게 책임 있게 하려고 했던 대통령으로 기억합니다.” 양정철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홍보기획비서관)의 회고다.

먼저 가기에 아쉬운 분은 애석하고, 좀 비켜 주었으면 하는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에랴. 흐르는 눈물을 닦아도 다시 닦아도 어찌 할 수 없었다.

여세를 몰아 담임 목사와 같이 조만간 봉하 마을과 광주 5·18 국립묘지를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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