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자 주민들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 최영 장군의 은덕을 기려 지은 사당. 1970년대 복원됐다.

추자도 주민들은 최영 장군(1316~1388)을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다. 최영은 홍건적과 왜구, 원나라의 세력을 물리친 고려 말의 명장이자 충신이다.

고려 말의 대사건은 1368년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 대군이 대제국 원나라를 몰락시킨 것이다. 그러나 탐라는 원나라의 남은 세력인 목호(牧胡·말을 키우던 오랑캐)들의 기세가 등등해 고려 정부는 제주마를 명나라에 바치질 못했다. 1374년(공민왕 23) 목호의 우두머리 석질리(石迭里) 등은 원나라 황제가 키운 말을 내줄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을 제주행병도통사(濟州行兵都統使)로 삼아 난을 진압하도록 했다.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군사 2만5000여 명과 전함 314척으로 구성된 원정군은 1374년 여름 제주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났다.

원정에 나선 군사들은 추자도 점산곶으로 대피해 약 30일간 머물렀다. 바다에 고기는 많았으나 주민들은 잡을 줄을 몰라 궁핍했다. 속설에 따르면 최영은 그물을 짜는 법과 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줬다. 이에 주민들은 생활이 나아졌고, 장군의 덕을 잊지 못해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추자도는 왜구의 침입에 시달렸다. 주민들은 왜구를 대대적으로 토벌한 최영 장군을 모시면 환란을 면할 것으로 여겨 사당을 지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추자초등학교 북쪽 벼랑 위에 들어선 사당은 1970년대 복원됐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면적은 16㎡다. 겹처마 합각지붕을 올렸으며 자연석으로 담장을 둘렀다.

1981년 제주도기념물 11호로 지정됐다. 주민들은 참조기가 잡히기 시작하는 봄철인 음력 이월 보름날에 최영 장군에게 대제(大祭)를 올려 풍어와 풍농을 기원하고 있다.

 

   
▲ 사당 안에는 최영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걸려 있다.

사당에는 검은 비석의 위패가 있다. 1m의 높이의 비석에는 ‘조국도통대장 최영장군 신위(朝國都統大將 崔瑩將軍 神位)’라 음각해 빨간색으로 칠했다. 위패 왼쪽에는 영정을 걸었다.

추자도에 피항했던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은 1374년 8월 명월포(한림읍)에 상륙했다. 이에 목호 세력도 기병 3000여 명과 수많은 보병으로 맞섰다. 고려군과 목호군은 새별오름과 어음, 금악, 연래(예래), 홍로(동홍)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패전을 거듭한 목호군은 서귀포 법환 앞바다 범섬으로 달아나 마지막 항전을 벌였으나 최후를 맞이했다. 목호의 난이 진압돼 탐라는 100년에 걸친 이민족(몽골)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몽골인과 탐라 여인 사이에 낳은 후손들의 상당수가 목호군에 동조하거나 가담해 결국 수많은 도민이 목숨을 잃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