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절에 가냐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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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시인

 

나에겐 불심 깊은 친구가 있다. 지난 5월 말엔 그 친구와 셋이서 설악산 ‘오세암’과 ‘봉정암’에 하루씩 머무르며 대청봉에 오르는 고통과 환희를 함께 느끼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가는 길은 내설악 가파른 길이었다. 오르고 내리는 험한 길 막바지 쉼터에서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자주 절에 가냐?”

 

“절하러 간다.”

 

절에 절하러 간다는 무뚝뚝한 친구의 말에 나는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다시 물었다.

 

“이제 70 다 된 나이에 무엇을 바라고 빌려고 절한단 말이냐?”

 

“복을 빌려고 절하는 게 아니라 더 낮추려고 절하는 거야”

 

쿵하게 저려오는 감동이었다.

 

나는 오세암에서 친구와 함께 저녁 예불에 참석. 108배를 함께 해보기로 작정하고 무릎을 꿇었다. 독경은 아무 뜻도 알 수 없는 범어였으나 신도들의 함께 소리를 모으는 독송은 듣기에 좋았고 신비로웠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108배를 시작했으나 제대로는 한 번도 하지 못하고 내식으로 편하게 절을 하는데 50배도 하기 전에 땀이 비 오듯 내리고 허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기로 108배를 마쳤을 때는 완전 땀범벅이었다. 절은 자신을 가장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고행이었다. 오체투지(五體投地), 우리 몸의 이마와 두 팔, 두 무릎을 땅에 대고 절하는 불교의 인사법이다.

 

108배, 나아가 1080배 3000배를 해야 할 사람은 우리 같이 힘없는 소시민이 아니라 권력 가진 자들이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을 가장 낮춰 백성을 높일 때 비로소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정권 초기에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것처럼 보여도 권력은 송곳과 같아서 비죽이 솟아나와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고사가 있다. 중국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로 재능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송곳처럼 솟아나와 감출 수 없다는 말인데, 권력도 꼭 그와 같아서 거짓으로 낮추려 해도 송곳처럼 솟아 나와 고개를 드는 것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지극히 자신을 낮춰 상대를 높이는 고행,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 낮춤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면서도 힘들게 대청봉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통쾌해하는 우리 셋은 얼른 내려가기로 했다. 봉정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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