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우다-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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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국장대우
‘…/ 당신은 똥싼 옷을 서랍장에 숨겨 놓고/ 자신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생을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나를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겨드리니까/ 웬 꼬마 계집아이가 콧물 흘리며/ 얌전하게 보료 위에 계신다/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말하지 말자.’

생로병사가 어찌 가벼운 일일까.

아기가 태어나고 커가면서 옹알이를 할 때 그 기쁨을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칼도, 수염도 희어지고, 시력도 뚝뚝 떨어지는 것을 누가 가볍다고 했는가.

배우자도 자식도 몰라보는 치매에 걸려 고생하다가 결국 흙으로 가는 인생이 과연 가벼운 것인가.

황지우 시인은 ‘안부 1’이라는 시를 통해 생로병사를 역설적으로 가볍다고 했는가보다.

▲술꾼은 밤거리를 헤매기 일쑤다.

그러다보면 익숙지 않은 곳에 가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는 동서남북을 몰라 진짜 헤맨다.

바다 쪽으로 가고자 했는데 나중에 보면 산 쪽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술꾼은 술이 깬 낮에는 숙취로 고생할 뿐 길을 몰라 도심지에서 헤매지 않는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사람은 다르다. 밤낮 헤매는 것이다.

집을 나서면 그때부터 길을 잃는다.

제주지역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로 고령사회가 됐다.

그런 만큼 치매 노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요즘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제주지역에서 툭하면 치매 노인이 길을 잃어 경찰이 가족과 집을 찾아주는 일이 빈번하다.

맞벌이가 일상화되고, 사회가 시계 초침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에서 한 가족이 치매를 품기에는 너무 벅차다.

치매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치매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도입할 방침을 밝혀 관심이 모아진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치매지원센터 확대, 치매책임병원 설립, 노인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치매 의료비의 90% 건강보험 적용 등을 내세운 바 있다.

정부 측은 치매지원센터나 치매책임병원 설립의 경우 법률 개정 없이 예산만 확보하면 2년 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품기에 나설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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