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정초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 때 일이다.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불참했다. 민정수석실이 은밀히 알아봤더니 의전 서열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청와대가 그동안의 관행이라며 헌재소장을 국무총리보다 뒷자리에 배정했던 것이다.

그때 헌재가 행정수도 이전에 위헌결정을 내린 뒤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가 된 탓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헌재의 격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헌재 측은 헌재소장 서열을 총리 뒤에 놓는 것은 법체계와 헌재 위상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헌법기관이고 국회법에도 ‘대법원장, 헌재소장, 총리’ 순으로 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 뒤로 청와대는 헌재소장을 의전 서열 3위 대법원장에 이어 4위로 끌어올렸다. 이 순서는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흔히 3부 요인하면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를 일컫는다. 삼권분립을 명시한 헌법이 탄생한 후 3부의 수장이 대등하다는 의미로 굳어진 용어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은 별도의 예우 규정이 있다.

그럼에도 의전에 혼선이 생긴 건 1988년 헌법재판소가 등장하면서다. 헌재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탄생한 새 헌법에 따라 독립기관으로 설립됐다. 처음에는 헌재소장에 대한 의전 서열을 명시한 규정이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 윤영철 헌재소장이 취임한 뒤에 대법원장에 준하는 요인으로 의전 서열이 정해진 게다.

행정자치부의 의전편람에도 각종 국가 기념행사의 의전 서열은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헌재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관위원장 순이다. 지난 10일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정부 요인들과 인사를 나눌 때도 똑같은 순이었다.

▲엊그제 헌재가 ‘3부 요인’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니 가급적 쓰지 말아 달라고 출입기자단에 요청했다고 한다. 대신 ‘국가 요인’이란 용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강조해 궁금증을 낳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국민적 관심을 산 헌재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나름의 위상을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민주화와 함께 태동한 헌재는 국민생활과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잇따라 내려 위상이 한껏 높아진 게 사실이다. 법조계에서도 헌재 재판관을 대법관 못지않게 영예로운 자리로 여긴다. 중요한 건 헌재든 대법원이든 그 권한이 아니라 국민적 신뢰라고 본다.

국민의 공감과 믿음을 얻는 만큼 그 위상은 절로 판가름 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