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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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능자/수필자

해마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초등학교 시절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얼마 안 되었던 무렵이었죠. 역사의 방향과 개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두 불안해하고 막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황해도가 고향이었던 선생님은 혈혈단신으로 피난 내려와 5학년 일 년 동안 우리들을 가르치셨죠.


4학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반에도 여러 명의 피난 온 학생들이 전입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 해맑은 얼굴에 조죽 해 보이는 키 큰 여학생이 한 눈에 들어왔어요. 그 친구는 들어오자마자 반장이 되었고, 세련된 표준말로 반 아이들을 제압했습니다. 토박이 아이들은 그 친구의 기세에 눌려 입도 뻥긋 하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담임선생님은 그 친구를 ‘꼬마 선생님’으로 지명하여 선생님이 결근하거나 바쁠 때에는 대신 가르친 적도 있었지요. 언제부터인가 그 친구는 두려운 존재로 군림 하면서 ‘우리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학년이 끝날 무렵 일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결혼을 하게 되어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시던 날, 그 친구가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도 따라 울었지요. 그런데 나는 눈물이 안 나오더군요. 정말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어요. 나에게 눈물이 나게 한 것은 그 친구의 회초리였습니다.


“왜 때려?”


“너는 선생님이 떠나시는데 슬프지도 않니?”


“선생님은 너만 예뻐하니까, 대장 노릇하며 우리를 못살게 굴었지!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아!


그 친구는 나의 돌출 행동에 크게 놀라워했습니다. 나는 억눌렸던 울분을 터뜨려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다음 날, 그 친구에게 사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 후로 나는 교실 안의 작은 섬이 되어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요즘 말하는 ‘왕따’를 당한 것입니다. 지금 백 발이 다 되었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보내 주지 않았더라면 그 힘겨웠던 상황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었을까요? 선생님은 나의 생채기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나와 우리들의 영웅을 불러 내가 ‘따돌림’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물으셨죠. 선생님은 잔잔한 미소로 우리를 다독거리며 화해를 시켜 주셨습니다.


도덕 시간에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연설문 중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칠판에 크게 쓰시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란 말씀으로 민주주의 정신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었고 사랑을 골고루 베풀어 주었던 스승이셨습니다. 나는 반평생을 교직에 몸담았지만, 선생님의 고매한 인품과 그 깊은 교육철학은 흉내 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요즘 들어 교육의 주소가 어디인지,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선생님의 평등교육이 간절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단호한 어조로 나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사는 많으나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지만 제자는 없다.” 이 말을 들을 때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과연 편애하지 않고 따돌림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제자들에게 얼마나 미덥고 넉넉한 사랑을 주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진정 ‘우리들의 영웅’이셨고 내 인생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습니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산수(傘壽)가 되었을 당신. 지금 어디 계시나요?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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