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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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근래에 우리들이 겪은 여러 가지 상황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작용한 듯하다. 나라 운영은 정치가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또는 고단한 일상에 지쳐 여력이 없어서, 아니면 정치라면 아예 실망이 커서 등등의 이유로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국민들의 주권 행사가 어느 정도까지 정치가들의 탈선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떤 직업이든 종사하든 사람들은 일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여러 가지 손실과 피해가 따른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둘 것이다.

그런데 유독 정치가들만은 이런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큰돈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 자신들이 법과 상식 너머에 존재하는 듯이 느끼게 되는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이 뽑은 정치가들이 국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일을 하리라는 당연한 기대는 현실적으로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던가. 정치가들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지 종종 의문이 생긴다.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1919~1952)은 ‘내 삶의 이유(La Razon de Mi Vida)’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거리에 아이들의 어머니로, 노동자들의 동료로, 소외받는 여성들의 자매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가족’이 되는 것이 그녀의 존재 이유이며, 이는 단순한 박애정신이나 자선 사업을 넘어 양극화된 사회를 평준화시켜 빈부의 상호 간 결속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그녀의 정책은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일부에서는 권력 추구를 위한 위선이었다느니, 남편인 후안 페론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다느니, 그녀의 정책 때문에 결국은 나라가 망했다느니 하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34세에 생을 마감한 그녀는 쌓아 놓은 돈도 없었으며, 망명한 페론은 에바의 자서전 인쇄비로 생활했다고 한다. 또한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페론 정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정부의 실책이 사실은 나라를 망친 원인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아르헨티나에서 전설적 존재인 에바는 인종차별과 신분 격차의 20세기 초에 살았다. 소수의 특권층에 의해 제한되었던 선거권은 1912년에 남성들에게만 주어졌고, 군부와 우파 정권의 부정선거로 연장되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던 ‘치욕의 10년’이 1943년 장교들의 쿠데타로 종식되었다.

노동성 장관으로 시작하여 대통령이 된 후안 페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식량 수출로 외화를 벌어 아르헨티나의 외채를 조기상환하여 경제적 독립을 이뤘다. 철도회사를 국유화하고 산업화를 진행하여 1947년부터 제트전투기를 개발 생산했다.

페론의 부인이 된 에바는 노동복지성과 건강성 장관으로서 민원을 처리하고,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빈민들을 위한 주택과 병원, 고아원을 건설하였다. 장학금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에바는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률로 여성들이 투표권과 참정권을 갖게 하였다.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게 기생해서 부와 권력을 독점했던 국내의 기득권층으로부터 고통 받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녀에게 최우선 목표였다.

오늘날 우리들이 선출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나라살림 잘하는 것이 그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을까. 그들의 가치관은 국민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욱 자신의 목표와 그 정당성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삶을 이해하는 섬세한 감수성과 깊은 박애정신을 유효 적절하게 발휘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밝은 불꽃을 일으키고 더 멀리 번져가게 한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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