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놋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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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오래되었다.

 

애지중지한 물품이다. 손때, 영혼이 깃들어 있는 놋쇠로 만든 생활도구, 유기라고도 한다.

 

청동기 시대의 청동도 놋쇠의 하나다. 신라 때는 전문적으로 놋그릇을 다루는 철유전鐵鍮典이라는 상설기구가 설치되었다고 전한다.

 

시대에 따라 지방마다 그 제작 방법을 달리하며 놋그릇의 종류는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주물유기와 방짜유기로 나눠진 그 제작 방법에서 식기류, 혼사용구, 제사용구, 난방용구 등으로 금속 공예미가 발전해 왔다.

 

질이 좋은 유기로 알려진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도가니에 녹인 엿물로 바둑알과 같은 둥근 놋쇠 덩어리를 만든다. 이 덩어리를 바둑 또는 바데기라고 부른다. 방짜 제작법은 주물 제작법과 다르다. 놋쇠 덩어리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쳐서 그릇의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몇 해 전 여행길에 대구의 한 방짜 유기를 제작하는 현장에 들른 적이 있었다. 열 번이나 넘는 공정의 기법으로 만들어내는 놋그릇, 600도 이상 불에 달궈 메질을 되풀이한다. 담금질로 열처리하는 제품은 손으로 시작해 손으로 끝나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좋은 금속에는 좋은 성분이 들어 있어 좋은 금속을 다루면 수명이 길어진다. 는 유기장의 말이었다.

 

어머님은 명절이나 제사가 다가오면 놋그릇을 닦으신다.

 

마당 한쪽에 헌 멍석을 깔고 앉아 밭볏짚을 둘둘 말아 잿가루와 고운 흙을 섞는다. 듬뿍 묻혀 손을 노린다. 문지르는 소리, 사각 사각. 까맣게 붙어있던 세월의 찌꺼기들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닦으신다. 당신의 궁핍한 삶의 흔적도 함께 지우시려는 듯 손에 힘을 가한다. 겹겹이 붙어 초라했던 지나간 흔적들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는 아픔을 참아내는 놋그릇이다. 파리가 앉으면 놀라서 미끄러질 것 같다. 수고로움에 화답하듯 뽀얀 속살을 드려내며, 수줍은 미소, 맑고 고운 제 색깔이 어머님 마음을 닮아 간다.

 

한 시절 상의 상좌에 올랐던 놋그릇. 쉽게 깨지지 않고 보온성과 살균력이 좋다는 놋그릇이다.

 

이런 그릇도 변화하는 세월 앞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녹이 슬어 광을 내는 데 불편함이 있어서다. 또한 번거롭고 무겁다는 이유로 짭짤한 간이 들어간 음식은 양은과 스테인레스에 밀려 났다. 인젠 녹청도 볼 수 없고, 어머니의 업도 내려놓았다.

 

거실 작은 궤 속에 흰 광목으로 돌돌 말아 숙면하고 있는 한 벌의 놋그릇이 내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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