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은 지켜질 때 아름답다
관습은 지켜질 때 아름답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명언. 서귀포문화원장/수필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 마을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전통적 가치인 전통의례가 산업화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서양문화와 공존하면서 우리의 의식세계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본다.

이 시대를 살아온 옛날 어르신들은 삶의 근간이 되는 관습과 예법을 중시하였으며 앞으로도 당연히 중요할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예의 근본이라 일컫는 ‘관혼상제’ 외에도 많은 관습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관습이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말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충, 효, 예를 중요시하며 제사를 중시하며 살아왔는데 현재에 와선 ‘효’와 ‘예’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초상에서 대상 담제에 이르던 상례가 49제로 모두 마무리되고, 제사도 여러 가지 이유를 달아 저녁 9시쯤에 하는 집안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옛날에는 3대까지 모시던 제사가 지금은 조부모가 아닌 당 부모에 대해서도 합제라 하여 아버님 제사에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제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돌아가신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듯이 하는 것’이지 그냥 거치고 지나가는 의례는 아니지 않은가. 제사의 근원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때는 천지, 일월, 성신, 산천의 모든 신께 기원하는 제로 지내 왔으나, 고려시대부터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애모의 표시로 가정마다 제사 지냈다. 즉, 조상에 대한 추모, 자손의 번영, 친족 간의 화합의 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예법이 바뀜으로 인하여 조상에 대한 존경, 어르신에 대한 공경 또한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제사를 저녁 9시에 지낸다고 해서 조상 섬김이 부족하거나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한국 전통 가례의 틀은 깨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제사시간을 바꾸거나 합제를 한다 하여 부모는 뭐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이기 때문이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무엇인가. 그것이 아니라고 따질 관계인가. 어머니는 다 큰 자식 걱정하고 또 그 어머니는 다 늙은 자식 걱정한다. 이처럼 부모 자식 같은 관계가 하늘 아래 또 있겠는가. 제사 때 차려지는 음식을 보더라도 조상이 자손을 염려하는 마음이 크게 느껴진다. 과일을 올리는데도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대추는 올리나 씨 없는 과일은 올리지 않으며, 나물도 꺾어도 돋아나는 고사리 등 음식마다 그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가 이런 조상이 제사를 소중히 생각하고 정성으로 모시는 것은 인본주의에 입각한 도덕률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부터인가 뉴스를 보면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매장하며, 직장동료 살인, 사기, 뺑소니 등 먹물 같은 사회가 다가와 버린 것은 빠른 성장이 잃어버릴 것도 많은 것 같다는 걸 느낀다.

우리가 이루고 있는 가족 단위가 비록 작게 보일 수 있으나 그 틀에서 이루어지는 엄중한 구속성과 신뢰가 뒷받침되면서 이 사회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관혼상제의 가례는 유구한 전통관습이고 정신이며 무형문화유산의 절대가치인 것이다. 예의가 없으면 무례하게 된다. 즉 관습은 우리 곁을 떠날 수 없고 언제나 우리에게 남겨진 예의라 할 것이며, 관습이 지켜질 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