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전국 20개의 목(牧) 가운데 제주목에만 유일하게 있었던 2층 누각인 망경루(望京樓) 전경.

 

관청은 기와집, 민가는 초가가 대부분이었던 조선시대에 2층 건물은 흔치 않았다.

망경루는 조선시대 지방에 있던 20개의 목(牧) 가운데 제주목에만 유일하게 있었던 2층 누각 건축물이다.

망경(望京)은 말 그대로 임금이 있는 한양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목사가 첫 부임하면 필히 이곳에 올라 임금의 은덕을 기리며 한양을 향해 절을 했었다.

제주목 관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지어진 망경루는 멀리서 침입하는 왜구를 감시하는 역할도 했다.

망경루는 1556년(명종 11) 목사 김수문이 창건했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을묘왜변(1555년)이 일어나는 등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때였다.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감시하기 위해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진 누각은 감시초소로 제격이었다.

망경루는 1668년(현종 9) 목사 이연이 개축을 했다. 1806년(순조 6)에는 박종주 목사가 개건을 했다. 1861년(철종 12) 신종익 목사는 2층 대청마루에 넓은 평상인 좌탑(坐榻)을 설치했다.

일제는 1913년 제주도청 청사를 짓는다며 유서 깊은 망경루를 헐어버렸다.

제주시는 2006년 14억원을 들여 건축면적 282㎡(85평)로 2층 누각을 복원했다. 탐라순력도에 나온 그대로 고증을 거쳐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망경루 1층에는 탐라순력도(보물 제652-6호)를 테마로 한 역사체험공간이 마련됐다.

이형상 목사가 1702년 10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 21일 동안 순력을 기록한 화첩이 탐라순력도다.

 

   
▲ 1702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의 ‘감귤봉진’에 나온 망경루 모습.

순력(巡歷)은 지방관이 고을과 군주둔지를 순시하며 민정을 살피고 군기를 조사했던 임무였다. 그림은 제주목 소속 화공(畵工) 김남길이 그렸다.

이 화첩은 300년 전인 18세기 초 제주의 관아 건물과 군사 시설, 지형, 풍물 등이 자세히 기록돼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남았다.

탐라순력도에 기록된 제주는 어땠을까. 제주삼읍의 민가는 9552호에 인구는 4만3515명이었다.

밭은 3640결이고, 목장 64곳에서 말 9372마리, 소 703마리가 사육됐다. 국립 과수원에 해당하는 과원은 42곳으로 귤나무 7300여 그루가 심어졌다.

진본은 이형상 목사 후손들이 간직해오다가 1998년 기증하면서 제주시가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