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매섭다.


금방 눈이라도 내릴 것처럼 구름이 찬 공기를 몰고 온다. 춘삼월 바람이 시샘을 하면 검은 암소 뿔도 오그라든다는데 봄이 올 것 같지 않다. 뼛 속까지 파고드는 늦추위와 궂은 날씨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 누더기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봄을 맞을까.

 

간간이 수줍은 봄 햇살이 오후의 창가를 비추면 얼른 문을 열어 반갑게 청해보지만 금방 구름에 가려져 따사롭지 않다. 언제 봄 같은 봄이 올까? 살면서 무수히 흘려버린 봄날들 다시 그 시절이 돌아온다면..

 

부지불식간 찾아 온 실패를 수습할 겨를도 없이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는 암울했다. 왜곡된 소문이 나를 괴롭혔지만 내게는 해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자식들도 객지에 나가 없는 고향에서의 삶이 낯설게 느껴져 한적한 곳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 살고 싶었다.

 

언젠가, 곧은 나무는 가운데 선다며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공원이나 부잣집 정원에서 대접받는 건 휘어지고 비틀어진 기형들 뿐 아닌가. 곧거나 쭉쭉 뻗은 나무는 화목용으로 잘려나가거나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철사 줄로 칭칭 감아 틀어지게 만들어놓고서야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는다.


곧은 나무를 휘어지게 만들지언정 사람에게는 그런 방법을 쓰면 안 되는 것인데, 갑자기 들이닥친 내 운명의 변화가 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신이 개입하여 농락하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어렵게 추위가 지나갈 무렵 오랜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어릴 적 곱고 늘씬한 몸매에 심성이 착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 서울로 떠났었다. 40년 만의 만남이다. 나이가 들면 귀소 본능이 발동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긴 세월이 지나 찾은 고향에서의 삶을 생각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 지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어릴 적 친구와 나는 웃음이 많아 깔깔대다 넘어질 만큼 웃을 때도 많았다. 할머니가 엄마아빠는 바쁜데 그렇게 많이 웃으면 어디서 돈이라도 나오냐며 면박을 주실 정도였다. 웃음이 돈이 되었다면 서로 부자가 되어 걱정 없이 살아왔을텐데,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친구는 점잖은 모습으로 심각하게 말을 던진다.

 

서울 생활은 잠시 화려했지만 탄탄대로는 아니었다고 한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 어린 삼남매를 혼자 껴안게 되었고, 객지에서 삼남매를 키우며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 일이었다는 친구의 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동병상련이란 이런 것일까. 삼남매를 키우며 살아온 내 삶과도 비슷해 가슴이 뭉클하여 손수건을 꺼내게 만든다.

 

삼남매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키워 출가까지 시키고 나니 그 시절이 꿈만 같다고 했다. 이제 친구는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고 고향에서의 소박한 삶을 꿈꾸고 있다.

 

어린 시절 웃음이 많았던 우린 차 한 잔을 마시며 옛날을 회상하다 보니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마당 화분에 심어놓은 홍매화 봉우리가 한창 물이 오르고, 삶이 버거워 웃음이 침몰되고 시간도 멈춘 듯 했던 내 인생에도 조금씩 봄소식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지나온 인생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진 않지만 인간의 삶에도 사계절이 있으니 그 모든 계절을 겪어본 사람만이 특별한 봄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즘 수필을 쓰고 배우며 내 삶에 없던 새로운 봄을 맞고 있다.


내가 살아온 날들, 가족, 친구의 이야기들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된다. 힘들었던 과거가 지나고 세월이 흐르고 나니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써야 될 글들이, 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풍파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지금처럼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사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나와 가족이 건강함에 행복하며 다시 돋는 새싹에 경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봄을 맞고 있다. 

 

아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