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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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나는 진정 제주인인가 하는 자문에 빠질 때가 있다. 삼십 년 가까이 살았으니 충분히 제주 사람이라 할 만도 한데, 가끔 물에 뜬 기름처럼 겉돌곤 한다.

제주에 새 둥지를 틀었던 시절이다. 갈치와 고등어 비린내가 역겨워 이 생선들을 쉽게 입안에 들이질 못할 줄 알았다. 한동안 식탁에 올리지 못했던 비린내가 스멀스멀 물 스며들듯 하더니, 어느새 고소한 맛에 길들여 가고 있었다.

혓바닥에 올려 배지근하다는 뜻의 의미를 한창 곱씹을 때다. 갈치와 고등어가 갑자기 금치로 신분 상승하는 바람에, 은빛 좌판에 눈독 들이며 지갑 사정과 타협하는 처지로 변했다. 마치 여기까지만이라는 듯, 생선 비린내만이 곧 제주가 아니라는 현실에 눈을 떴다.

몇 년 동안은 의도적으로 또박또박 표준어로 말을 걸고 답했다. 나는 서울내기라고. 그 시절 걸핏하면 ‘육지 것들’이라고 치부하는 배타적인 말에, 방패막이가 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몇 안 되는 모임에서 공통 화젯거리에 내가 들이밀 틈은 별로 없었다. 동창회며 향우회, 무조건 어우르는 괸당문화, 이리저리 엉긴 좁은 지역사회의 인맥은 낯설기만 했다. 끼리끼리 모이기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느끼는 고립감은, 함께 공유할 수 없는 거리로 왔다.

지금도 어울리다 어느 시점에선 말없이 앉아, 이런 벽을 넘어야 할 결혼이주 여성의 서러움, 귀촌이나 귀농인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방인에게 이해와 배려심이 필요한, 동병상련이랄까. 이주민이 함께 어울려 살려면 적잖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섬 지방 특유의 토속적인 풍습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게 곧 제주의 참 얼굴이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답답했다.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들, 버려도 될 것들이 오랜 관습에 뒤엉겨 존재했다. 그건 내가 살아온 환경과 새로 적응해야 할 문화의 충돌이었다. 강인한 생활력과 매사에 거침없는 제주 여인들 틈에서 겪는 갈등이랄까.

복잡한 형식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도 그렇고, 간결하게 살기 원하는 내 사고 안으로 들이긴 버거웠으리라. 적응하려 노력하고 타협하다 내린 결론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다소 편협함이 있겠지만 내키지 않는 일에 끌려다니는 것보다, 자신에게 솔직한 게 낫다는 깨달음이다. 이런 괴리감 앞에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는 나이로, 소신대로 하겠다는 고집이라 할지 그런.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대책 없이 버리고 밀려오는 해양 쓰레기와 헝겊 쪼개듯 마구잡이식 개발에 분노하고 아파한다. 제주의 첫인상으로 노란 유채꽃과 검은 돌담의 조화, 가없는 수평선에 시선이 머물던 순수한 아름다움에 홀딱 빠져들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댁은 대대로 제주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그 집안 호적에 오른 며느리만으로도 나는 어엿한 제주인 아닌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경조사에서 느끼는 복잡한 형식을 이제는 간소하게 치렀으면 한다. 풍습에 얽매인 채 옛것만 고집하는 생활 주변의 일에 감히 변화가 일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원래의 순수한 가치가 덧칠돼 발목을 잡는 일이 많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내일을 위해 한발 앞서는, 누구나 거부감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제주의 모습을 그려 본다.

나의 조그마한 갈망이 갈치와 고등어의 비린내처럼, 슬며시 스며들어 더욱 살맛 나는 제주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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