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김에 집수리하는 심정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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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 초빙교수/논설위원

우리나라 속담에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이 있다. 인생길을 열심히 달리다가 넘어졌다면, 너무 속상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고 차라리 숨을 고르고서 장차 달려갈 여정을 준비하란 뜻이리라.

하지만 제주에서는 넘어져도 쉬지를 못한다. 지난 3월 16일, 한 라디오방송과의 대담에서 원희룡 지사가 ‘엎어진 김에 집수리를 하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 관광 금지령’을 발표하자 제주관광이 직격탄을 맞고 엎드러진 순간, 도백이 곧바로 일어서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중국 여행사가 갑질하는 저가 단체관광객은 장기적으로는 퇴출시켜야 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 갑질용 고객은 아무리 시간이 가도 저희들의 우량고객일 수 없습니다. 어차피 엎어진 김에 집수리 하고 간다는 개념으로 저희들이 긴장을 단단히 해서 체질개선을 해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시장다변화, 단기적으로는 내국인 관광객들부터 더 정성스럽게 맞이해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그런 투자로 가려는 겁니다.”

오죽하면 넘어져서 피가 흐르는 무릎으로 무너진 집을 고치겠다고 연장 먼저 찾았을까? 이 말을 들은 서울의 지인들이 올 봄에는 세미나를 제주도로 오겠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은 중국관광객에게 밀려서 오고 싶어도 못 오던 내국인들이 제주행 비행기를 속속 타기 시작했다.

제주도관광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3일까지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358만2332명으로 지난해보다 4% 가량 늘었다. 중국의 사드보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3월 16일부터 4월 3일까지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보다 85% 줄었지만, 내국인 관광객은 9% 늘었다. 중국인이 빠진 자리를 한국인이 그 이상으로 메워주고 있다. 게다가 일본, 대만, 필리핀·베트남·말레시아 등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7∼8% 가량 증가해 주었다.

다행히 중국의 유커(단체 관광객) 대신에 싼커(개별 관광객)들도 삼삼오오 봄의 들판을 수놓고 있으니, 이쯤 되면 위기가 기회로 역전되는 게 아닐까?

이 추세대로 나간다면 앞으로 제주관광은 중국발 황사를 말끔히 걷어내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청정한 제주의 색깔로 회복되리란 전망이다. ‘물도 싸면 여가 나고, 나무도 켜면 가루가 간다’는 속담처럼, 이참에 말로만 부르짖던 질적 관광의 혁신을 제대로 추진해보면 좋겠다.

특히 ‘누구를 위한 관광인가’에 주목해서 수십 년간 축적되어 온 관광산업의 구조적 적폐를 도려내야 할 때다. 우리 조상들이 피땀으로 만들어서 물려준 보물섬이 대대손손 지속 가능한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제주의 자연·사람·문화가 길이 보전돼야지 않겠는가.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성과를 창출한 이들이 사회와 환경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감당토록 하는 관광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제주관광에서 벌어들인 대기업의 호텔과 면세점 수익이 제주의 자연과 사회에 적절히 환류되는 장치가 필요하다. 투자진흥지구란 이름으로 부동산 투기와 개발 이익을 마음껏 향유하는 이들에게 세금마저 감면해 주는 우법(愚法)을 버리란 말이다.

그동안 발생한 쓰레기, 하수, 교통, 난개발 등의 문제 또한 설거지라 여기지 말고 엎어진 김에 집수리 하는 심정으로 풀어나간다면, 원희룡 도정 이후의 제주는 탐라국 천년의 역사를 새로 쓰는 신기원을 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임시방편적인 일에 매달려서는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 100년의 철학을 곱씹어 보아야 할 위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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