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안단테·안단테…‘천년의 섬’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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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비양도

비양도 산책

                           - 양민숙

 

바다 속 진동을 감지했는지

바람의 전령과 접속했는지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이미 비양도의 탄생을 알고 있었다 한다

시간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각각의 사연들은 섬 구석구석을 채우며

스스로 보태질 것이라는 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한다

 

익숙지 않은 공기가 푸른 하늘을 가를 때면

이곳에선 누구나

천년의 시간을 훔치게 된다

역사를 품은 돌들과

운율을 담은 파도와

세월의 향을 풍기는 비양봉과

바다 눈빛을 흘리는 사람과

시간의 흐름을 공유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섬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야기 자리 선명히 찍힌다

 

짧은 산책길에 남는 긴 여운

누구나 이곳에선

발자국은 놔두고 간다는 걸

바다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한다

 

▲ 열네 번째 바람난장이 비양도에서 진행됐다. 김해곤 作 섬집 아기, 비양도.

비양도는 ‘천년의 섬’, ‘날아온 섬’ 등 특별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천년의 섬은 역사성에서, 날아온 섬은 지명에서 연유한다.

 

고려 목종 재임 시, 두 차례 화산폭발이 있었는데 목종10년의 기록을 보면 ‘탐라에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다 하므로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가서 보게 했다. 탐라 사람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솟아나올 때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땅이 벼락 치듯이 움직였다. 무릇 칠 주야를 하더니 비로소 구름과 안개가 걷히었는데 산의 높이는 백여 장이나 되고 주위는 사 십여 리나 되며 풀과 나무는 없고 연기가 산 위에 덮여 있어 이를 바라보면 석유황과 같으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라고 했다. 전공지가 몸소 산 밑에 이르러 그 모습을 그려서 바쳤다.’ 이 전 5년에도 화산폭발이 있었는데, 당시의 기록을 근거로 2002년 천년의 섬으로 기념했다.

 

비양봉이 굽어보는 곳, 바다가 잠시 허락한 해안가, 천년을 머금은 파편들의 나직한 소리 너머 김정희 시낭송가의 ‘비양도 산책’ 시로 바람난장을 연다. 손수 만든 꽃머리띠를 쓰자 바다의 여신 포스는 시심을 더 풍성케 하는 전령사가 된다.

 

▲ 김정희 시낭송가의 시 낭송 모습.

무대를 옮겨 노란 등대 가까이로 플루티스트 김수연과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 5년 윤성원, 3년 윤태준 오누이의 ‘섬집 아기’ 플루트 3중주다. 주변에 나앉은 돌들 위로 물오른 연둣빛 이끼들, 잠시 젖은 몸을 말리다 귀를 쫑긋 세우는 시간이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의 추임새에 연주가 어우러지자 저마다 옛 추억을 더듬는다.

 

“물이 들어오면 곧 갇히고 만다….” 제 임무를 마쳤다는 듯 태준이는 누구보다 걱정을 대신해준다. ‘Meditation de Thais’ 마스네의 곡을 김수연 플루티스트의 독주에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들인 양 온몸으로 선율을 탄다. 독주 내내 엉거주춤 앉아 보면대의 악보를 잡아주느라 애써준 태준이다. 연주 마무리로 ‘섬집 아기’ 합창에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 농익는다. 근처의 가마우지 무리, 백로도 공연이 끝날 때까지 미동조차 없다. 이날의 백미가 합창 아닐까.

 

다른 섬에 비해 손이 덜 탄 곳, 고교시절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본 그 에메랄드 물빛을 다시 만나진 못했지만 커다란 변모가 없음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갖가지 원형질들이 시원으로 가닿게 할 법한 오붓한 곳곳들이다.

 

섬 코너를 돌기 전 누군가가 변시지 로드라고 외친다. 아니나 다를까 변시지 화백의 화폭 한 점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 황금빛 여백 사이로 서있던 소나무 서너 그루가 넌지시 내려다보고 있다.

 

바다를 끼고 걷다 만난 비양도 지기인 코끼리 바위, 호니토의 전형인 애기 업은 바위가 어딘가를 응시하며 치성 드리러 오는 이를 기다린다.

 

▲ 플루티스트 윤성원·윤태준 어린이와 김수연씨의 공연 모습.

펄랑못에 청둥오리들이 한가롭다.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곳, 염습지로 못의 수위에 영향을 주며 해녀콩, 황근 등 다양한 군락을 이룬다.

 

비양분교장이 적막하다. 학생 수 2명이 전부다. 바람난장에 참석한 오누이와 이들의 5살 된 막내 여동생 예림이까지 어린이가 셋뿐인 섬이다.

 

바쁜 일행을 먼저 보내고, 어느새 비양봉 정상에 오르니 노란 등대는 이미 육지가 아닌, 섬으로 서있다. 물 수위에 따라 산과 섬으로 넘나드는 변신꾼이다.

 

점심 무렵 선착장 근처가 톳난장이다. 공동작업한 톳 수확물을 마무리하는 현장, 아침에 젖은 해녀복으로 오가던 그들의 빈 걸음, 그 속살을 엿본다. 싱그러운 톳내음이 후각을 자극한다.

 

‘누구나 이곳에선/발자국은 놔두고 간다는 걸/바다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되뇐다.

 

▲ 바람난장이 비양도에서 열린 가운데 바람난장 가족들이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장영춘 시인, 문순자 시인, 김영순 시인, 이애자 시인, 김순신 수필가, 김동인 선생님, 홍진숙 화가, 윤예림 어린이, 난장멤버 오승철, 강영란이 참석하다.

 

글=고해자

그림=김해곤

사진=허영숙

플루티스트=김수연

플루티스트=윤성원‧윤태준 어린이

시낭송=김정희

 

※다음 바람난장은 8일 한림읍 명월리 ‘명월대’에서 오전 11시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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