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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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지만, 예술가에게도 두려운 것은 그 예술이 남의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만난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나운규, 아리랑’은 개인 ‘나운규’와 그의 영화 ‘아리랑’이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줬다. 영화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제작된 흑백 무성영화로, 나운규(1902~1937)가 25세에 각본을 쓰고, 감독하고 주연으로 출연했다.

창극은 애초 영화 줄거리와 마찬가지로 3ㆍ1운동 때 일본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 실성한 영진이 일본 경찰 앞잡이며 지주의 마름(대리인)인 오기호가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하려 하자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호미에 묻힌 피를 보고 정신이 돌아온 영진이 포승줄에 묶여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서 끝이 난다. 장면 중간중간에 개인 나운규는 독백으로 가족과 멀어지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자신의 신세를 털어놓는다.

원본 필름조차 없는 영화 아리랑이 90년 세월을 넘어 창극으로 재탄생했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불후의 명작은 이런 것이다. 시간과 세월에도 부식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개인 나운규는 마지막 장면에서 절규한다. “아리랑은 신세타령 아니다. 오늘의 이야기다. 잊지 말아 달라”고.

▲눈을 돌려 TV 속 세월호를 본다. 세월호 침몰 이후 대한민국은 기억과 망각을 놓고 투쟁을 했다. 한쪽은 기억하려고, 한쪽은 망각하려고 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일상을 전폐하고 가슴만을 잡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리랑 고개’를 넘었다. 기억과 추모의 공간에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가 세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망각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언제적 세월호냐”며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 생존자들이다. 지금도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서 시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희생자를 희롱하거나 모욕하는 온갖 형태의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민심은 참사 전후로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지만, 대통령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참사 당일 구체적 행적에 대해 ‘여성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라고 주장하다 파면됐다. 누구이건 대통령 자리에 있다면 생명권을 포함한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고 수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인양된 세월호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다시 묻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이제 완전 뭍으로 올라와도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언제적 세월호냐”며 털고자 하면 안 된다.

“신세타령 아니다. 오늘의 이야기다. 잊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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