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옛 사람과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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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요즘 세상은 신선하게 여겨지는 단어들을 나열하면 문장이 되고 그 의미는 물론 현실도 저절로 생겨날 것으로 믿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세상을 대표하는 듯이 나돌아 다니는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리송한 것들이 많다.

일을 제대로 하는 듯이 보이려고 그럴 듯한 말을 만들어내는지, 아니면 실속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모호한 말이 꼬투리 잡히는 법 없이 방어할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많은 약속과 명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기회만 주어지면 가능한 많이 훔치며, 후에 문제가 되면 벌금을 약간 무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 같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유령처럼 실체 없는 말들이 뿌옇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믿음과 진실, 심사숙고의 흔적이 말에 생명을 주어 현실이 되는데, 우리들 사이에 그런 것들은 이제 너무 희귀하게 된 탓으로 보인다.

제주인의 전통과 민속을 수집하신 진성기 선생님의 민담집에는 제주도 말의 깊은 맛과, 자연스러운 인생철학을 드러내며 요즘 사회 현상과 대조되는 이야기가 있다.

한 예로 ‘올레집 옛말(Ⅰ)’ 에 ‘도래물 짐?장’을 보면 1959년 10월 6일 표선면 하천리에서 96세 여성 송 춘길님이 들려준 이야기로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도래물’(중문면 회수리)에 살던 김 서장은 59세까지 자식이 없었었는데 상처하였다. 양자를 들이고 그 후 재혼을 하였는데 환갑이 지나 아들을 낳았다.

새 부인은 재산을 양자에게 준 남편을 원망하며 친아들의 장래를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양자도 상황이 바뀌었으므로 양자 삼았던 일을 취소해달라고 했다.

김 서장은 사람의 약속은 백년 약속이라면서 어느 말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양자는 자신이 받은 재산의 반을 동생에게 주려고 하였으나 이 역시 허락받지 못했다.

한번 준 재산은 이미 끝난 일이라 더 이상 거론할 것도 없고, 조상의 제사 벌초 등 대대손손 물려 갈 장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게 된 양자는 동생을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린 동생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보살피며, 버려진 척박한 땅을 동생에게 싼 값으로 사도록 한 후 자신이 직접 그 땅을 개간하여 좋은 밭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국 동생도 재산 넉넉한 양자 못지않게 농토를 갖게 되며, 둘은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친밀하게 살았다.

지금 세상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노인이 양자를 내보려고 하지 않을까.

양자는 양자대로 그 동안의 공적을 내세우며 빈손으로 물러서지 못하겠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다가 송사가 벌어지고, 노인이 죽은 후에도 양자와 친자의 싸움은 이어져 둘의 삶은 피폐해지고 재산도 바닥났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요즘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막혀 있는지 느끼게 된다.

재물 앞에서 무슨 약속이 유효한가. 형제끼리 재판도 하고, 부모 자식 사이에 원망도 깊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약속을 지키는 삶이 옳다는 것만 보여줬을 뿐인데, 어렵게만 여겨지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을 본받은 양자는 동생이 잘 살도록 이끌고 보살핀다. 자신이 받은 사랑과 은혜를 실천하고 , 물려주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갑자기 평소에 이해되지 않던 ‘창조경제’의 뜻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얗게 날리는 스티로폼 가루처럼 거짓된 말이 날아다니고, 전복 없는 전복죽처럼 혁신 없는 혁신이 도시를 장악하는 듯이 여겨져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러울 때 위안이 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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