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의 원리로 나라를 다스리려는 위정자는 술책으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쪽에서 공격하면 저쪽에서도 반격해 오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는 소란하게 되고, 남 잡이가 제 잡이가 되어 너 죽고 나 죽게 된다. 그러므로 나 살자고 남을 죽이려 들지 말고, 남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 남이 없으면 나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니 상대적 가치를 존중하며 조화와 안정을 이루어 내는 게 정치의 도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선현의 지혜의 경구를 빌려 써야 할 정도로 우리의 정치 현실이 너무 불안하고 위태롭다.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는 이런 상황을 부채질이라도 하려는 듯 천박하고 자기중심적인 언사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나라의 불안이나 국익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은 자제하는 게 정치 지도자의 도린데.

혁명 주체세력이라 여기던 이들마저 선명성 경쟁을 벌이다 어느 순간 혁명의 대상이 되어 무참히 처형당했던 프랑스 혁명을 연상케 한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라든지,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란 섬뜩한 말들이 우리의 정치판에 거침없이 나돈다. 거기에 합세한 군중들의 주의 주장도 다름이 없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양 진영 모두 막다른 길에서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린다. 제동장치가 풀린 두 쪽의 한국호가 자폭이라도 할 기세로 돌진하는 형국이다. 매스컴마저 가세하여 ‘카더라’식 중계에 열을 올린다.

중재자는 없고 부추기는 세력들만 민(民)과 민(民)의 투쟁을 독려하는 이 난국. 어쩌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주변 경쟁국들은 자국의 번영을 위해 국력을 집중해 나아가는데 케케묵은 이념과 색깔론에 파묻혀 끼리끼리 죽자사자 난장이라니. 경쟁국에겐 신나는 볼거리다. 어쩌면 월남 패망의 전철을 밟아가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상황까지 간섭하려 드니 말이다. 이 판국에 저들의 편에 서서 제 발등을 찍어대는 기막힌 상황도 횡행한다. 자멸로 치닫는 이런 상황은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 타개해 나가야 하는데 그들 역시 법보다 군중의 소리에 좌지우지다. 군중을 선도하려는 용기나 결기는 없고 자기편에 가세할 군중들의 판세 헤아리기에 바쁘다. 어쩌면 오늘의 비극은 저들의 언행에 기인한달 수도 있다. 그들의 안중에는 나라와 국민은 없고 오직 승자독식의 정권욕뿐이니.

하지만 근자의 대통령들은 모두가 측근 비리에 곤욕을 치렀다. 다음 정권의 정치판이라고 전철을 밟지 말란 보장은 없다. 제도나 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의 성정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유불리만을 셈하는 꼼수로는 자신과 나라를 다시 불행의 늪으로 끌고 갈 공산이 크다. 어렵더라도 전철의 악순환을 방지할 법과 제도부터 손질하는 게 순서다.

정치는 애초부터 악정이나 선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이 선택한 정치 지도자에 따라 정치 양상이 달라질 뿐이다. 그 선택은 국가의 미래 명운과 직결되는 행위로 남는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난국 타개뿐 아니라 미래의 삶과 국가 체제의 정통성 유지·발전이라는 대의를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이념이나 정파, 지역이나 연줄 같은 다양한 정치 변수들을 초월해야 가능하다. 좋은 정치는 국민 각자의 지혜로운 선택에 달렸다. 지금의 정치 수준이 우리의 의식 수준이라면 얼마나 부끄러운 자화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