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과 조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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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삶은 운전석이지, 조수석은 아니다는 말이 있다. 자기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자의냐 타의냐의 문제다. 운전석에 있으면 자신의 컨디션과 그날 도로의 상황에 맞춰 핸들을 적절하게 조작할 수 있다. 자신의 몸도 운전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반면에 조수석에 있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몸과 마음은 남이 맞춰준 속도와 방향에 따라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꼭두각시나 다름없다.

이처럼 타의에 의해 자신이 휘둘리면 그것만큼 자괴감이 드는 일도 없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핸들을 주면 엄청난 중압감에 굴하지 말고 잘 다뤄야 한다. 남에게 맡겨놓으면 편안할지 모르지만, 때에 따라 현기증을 감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야 한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일신상의 처지와 형편이 급전직하했다. 신분은 최고 권력자에서 자연인으로 됐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대통령 연금은 국민연금으로 홀쭉해졌다. 당장 거처를 옮겨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저에서 같이 함께할 식솔들은 사비로 꾸려야 한다. 아무리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권력이 훅하고 날려가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탄핵 결정에 따른 어떤 메시지도 없어 본인의 심정은 알 길 없다. 하지만 가진 자에게 상실은 커다란 공포심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가진 자가 악착같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은 것은 가진 것의 쾌락과 달콤함, 가지지 못한 자의 공포와 비참함 모두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에너지의 몇 배라고 한다.

이는 공격군이 수비군의 3배 정도는 되어야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는 병가(兵家)의 상식과도 상통한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탄핵 사유 가운데 눈길 가는 단어는 ‘배반’이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라는 대목이다. 박근혜호가 여러 차례 갈지자 행보를 해도 운전석에 다른 이가 있을 것이라곤 십상시(十常侍)를 제외한 그 누구도 생각 못 했다. 상당수 민심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 헌재에 앞서 이미 탄핵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촛불도 태극기도 자신이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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