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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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건/수필가

고향 가까이에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살다가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거나 위로를 받고 싶을 때에는 고향엘 내려간다. 내 고향 바닷가에는 한 바퀴 휘돌 수 있는 길이 있어서 그 길을 걷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평정을 찾곤 한다.


바다는 어머니 품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바다는 넓고 깊으며, 그 안에서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다. 바다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수많은 추억들이 미역 줄기처럼 따라 올라 온다. 과거의 ‘나’의 모습은 물론 많은 친구들의 얼굴도 아스라이 밀려왔다 사라진다. 바다에 가면 우리들의 모임 센터가 되었던 ‘큰 바위 언덕’은 비바람을 막아주었고 수영하거나 고기를 낚는데 필요한 준비를 하던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오늘 그 바위 위에 앉아서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J군은 한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한 친구였다. 마음과 뜻이 잘 맞았던지 서로 집을 오가면서 친하게 지냈다. J군은 영리하고 성격이 꼼꼼한 편이며 만화책을 읽는데도 그 속도가 빨랐다. 어릴 적 놀이에서도 나와 경쟁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J군은 나보다 1년 늦게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어서 나보다 한 학년 후배가 된 것이다. 그 당시 중학교에서는 규율이 엄격했고 교련시간에는 군사훈련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었다. 그래서 상급생에게 거수경례를 부치는 것이 의무였다. J군과 나는 경례를 부치는 일 때문에 다투기 시작했다. 학교 규율과 친구 우정 사이에 갈등을 느끼긴 했으나 나는 J군에게 학교에서는 경례를 부치도록 요구했다. 친구는 반대했다. 친구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결이 쉽게 안 되어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J군과의 1차전은 학교가 파한 뒤 귀갓길 연못가의 빈터에서 벌어졌다. 이 싸움의 이유가 떳떳하지 못해서인지 나의 입장에서는 심하게 덤빌 수가 없었다. 붙잡고 싸우면서도 친구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의견이 틀어져서 그 후에 마을회관에서 2차전, 그리고 며칠 후에 3차전까지 벌렸던 것이다. 친구와 육박전을 3차전까지 치른 경우는 내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다. 그때 싸움에서는 누가 이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콧잔등에 상처가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일로 하여 중학교 시절에는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냈다.

 

그런데 내가 서울에서 살다가 20여 년 만에 귀향했을 때에 제일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친구가 J군이었다. 동창회도 만들고 산에도 함께 다니면서 우정을 나누었다. 그렇게 녹지 분야의 중견 공무원으로서 잘 지내다가 50대 중반에 J군은 갑자기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 후 나의 마음은 뭔가 빚진 것처럼 미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을 것 같았고 더 오래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벗이었기에 나의 마음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몇 년이 지나서 J군의 아들이 내가 소속해 있는 대학의 경영학과에 들어왔다. 매우 기쁜 마음으로 졸업할 때까지 가까이서, 멀리서 잘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결혼 주례까지 맡게 되어서 스스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고마운 인연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릴 적에 게임규칙이나 룰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는 데는 적극적이어서 친구들과 룰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했었던 것 같다. 윗사람에게는 예의 바르고 인사를 잘하였으며 나보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형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런데 내가 상급생이 되었을 때에 교칙을 준수하고 책임감도 발동이 되어서 친구에게까지 심하게 요구했었던 같다. 그 당시 저학년 때에는 학도호국단의 이름으로 기합을 많이 받았던 것이 일상처럼 되어 있었다. 결국 내가 조직의 규칙을 강조한 반면, J군은 우정이나 인간적인 면을 주장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업에서 4년여의 경력을 마감하고 교육계로 직장을 옮긴 것도 나의 이러한 성격적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기업의 경우가 교육계보다 법과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J군은 어릴 적부터 나의 잘못(?)을 잡아 부려고 하여 여러 번 싸움을 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늦게나마 용서를 빌고 싶다. 이러한 아픈 갈등의 추억 속에서 ‘나’의 모습을 하나씩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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