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지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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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욕망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고 행동한다. 그런 욕망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요인에 의해 형성되고 조종된다. 의식주에 대한 소박한 욕망에서부터 명예나 권력욕에 이르기까지 욕망의 양태는 다양하다. 사소한 욕망일지라도 굴리다 보면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게 그 속성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우리를 끊임없이 소비로 몰아간다. 핸드폰이 고장이 나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면 구매 행렬에 끼어들게 되고, ‘특가세일’이란 광고나 마케팅에 무심코 따라 나서게된다.

성정모는 그의 저서 ‘욕망사회(2016, 한겨레출판)’에서 ‘인간의 욕망은 삶의 기본 욕구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인간의 본능인 생존 욕구나 모방 행동,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행위나 자존감을 통해서 얻어지는 만족감들은 삶의 기본 욕구이면서 욕망이 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절대빈곤은 사라지고 있지만 상대적 빈곤이 늘어나는 이유다. 욕망이 채워지고 나서도 허기에 시달려야 하는 모순이 일어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해도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시장은 이런 소비 패턴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부추긴다. 우리의 삶은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 시장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다. 노동에 시달리며 얻은 재화를 거리낌 없이 소비에 쏟아붓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욕망은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서는 경제의 동력이 될지 모르지만 무언가에 대한 끝없는 갈증이나 탐욕이란 측면에서는 삶에 부정적이다. 돈이면 뭐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이는 모든 삶의 상황을 성과주의나 결과론으로 몰아간다. 성과나 결과만 좋으면 수단이나 과정은 무시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조장한다. 사기나 편취가 극성을 부리고 양심이나 측은지심 같은 인간성마저도 메말라버린다. 욕망의 덫에 갇힌 사회의 피아는 서로 경쟁의 대상이거나 적대관계에 놓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불신과 적대감이 넘쳐나는 욕망사회다. 정치마저도 이에 편승하여 근본적인 정책보다는 경제적 이득만 쥐어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앞 다퉈 선심성 미봉책을 남발한다.

덕본재말(德本財末)이란 성어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덕이 뿌리가 되고 재물은 사소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정치는 ‘德本財末’의 정도(正道)를 지향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의 덫에 갇혀 무한 경쟁의 몸부림이다. 피곤과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헬(hell)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인 이득을 우선하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삶의 방향으로 질주한다. 동서고금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다운 삶의 중심은 ‘덕’이지 ‘재물’이 아니다. 덕이 지배하는 사회는 발전과 번영을 구가했다. 진정한 힘의 원천은 덕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욕망의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덕을 강조하고 실천하는, 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덕치를 실현할 통치나 리더십의 선택은 어쩌면 시대의 당위라 해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우리의 욕망이 죽는 날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도 인간에겐 극기와 절제란 또 다른 힘이 있다. 욕망의 본능을 따를 것인가. 극기와 절제의 지혜를 발휘할 것인가. 국가가 공동운명체적 차원에서 그 선택의 해법을 찾아 나선다면 덕치의 이상 사회도 실현 가능한 역사(役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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