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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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아직 바람이 차갑다. 차가운 것은 날씨만도 아니다. 자고로 민심이 천심이라 했듯이 세상 민심이 편치 못하면 우주 대자연의 질서 역시 순탄할 리 없다. 탄핵정국과 북핵, 사드 등으로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실정은 국민들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임진년을 필두로 계사, 갑오(청일전쟁과 동학혁명), 을미(을미왜변), 병신, 정유(정유재란), 무술, 기해년에 이르기까지 7년여 동안 우리나라의 국운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하지만 역사는 강물처럼 흐르고 변화하는 속성을 지녔다. 그토록 암담했던 시절도 사라졌듯이 오늘 우리의 아픈 현실도 사라지고 말 것을 믿는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풍류가 있는 것 같다. 멋과 맛이 그것이다. 이 멋과 맛은 둘인 듯하면서도 기실은 하나이다. 멋은 외형의 성격을 지녔고 맛은 내면의 성품을 지녔다. 그러니까 양면성을 지녔지만 몸은 하나라는 얘기이다.

보기만 해도 멋있는 사람은 자주 만나볼수록 맛깔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이 욕심이 적고 소탈한 사람은 뜰 앞의 감나무를 닮은 사람이다. 봄이 되면 싹을 내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한 자락의 그늘을 내주며 가을이면 주렁주렁 가지마다 풍성한 홍시로 입을 떡 벌리게 만드는 그런 감나무, 그러다가 매서운 겨울이 되면 온몸을 갑옷으로 갈아입고 겨울잠에 들었다 봄이 되면 다시 파란 싹을 돋아내는 사계(四季)가 분명한 그 모습이 어쩌면 우리 인생을 닮은 것 같아 감나무가 좋다. 그래서 감나무가 집집마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제주에는 봄의 전령인 매화꽃과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그토록 매서운 찬 겨울을 이겨내고 꽃잎을 먼저 내미는 매화꽃을 보노라면 얼마나 봄이 그리우면 저토록 몸부림을 칠까 하는 연민의 정마저 든다. 하기야 진달래, 개나리, 벚꽃들이 곧 그 뒤를 이어 따라 오겠지만 봄꽃들의 특징은 그 성정 탓인지 지는 모습이 별로다. 화려함과 서두름의 뒷모습은 역시 자연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인생의 철학을 자연에서 배운다.

봄처녀가 푸른 잎을 입에 물고 사뿐사뿐 찾아올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제주 신풍리 명상원 귤밭 자락의 빈 곳에 푸성가리 씨앗을 뿌렸는데 싹눈이 올라왔다.

봄의 멋과 맛은 역시 나물류에 있다. 봄나물에서 잔잔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껴 보는 것 이것 괜찮은 일이다. 우리네 인생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마저 놓고 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데 무엇을 탐할 것이 있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할까? 잘못이 있다면 용서를 빌고 그 대가를 치루면 그만 아닌가. 언제까지 이렇게 국민의 손발을 묶고 경제와 안보를 흔들어야 하는 것일까? 요즘 탄핵정국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심각성은 정말 작은 일이 아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아무리 봄이 온다 해도 봄이 아니다.

진정한 봄은 우리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65년간이나 재위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뉴스를 접하며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을 봐도 8년의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도 그 지지도가 50%를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정말로 멋있는 사회와 맛깔스런 국가는 우리들의 마음,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새봄을 맞이하는 때에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멋과 맛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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