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는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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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이른 아침, 옥상에 올라 사위를 둘러본다. 앞산이 일찍 낯 씻어 동편으로 돌아앉았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스트레칭으로 밤새 눌어붙은 시간의 더께를 게워내고 있다.

봄기운이 어른거려도 시야는 씻은 듯 트였다. 이웃 마을에 다정하게 형제처럼 서 있는 워싱턴야자도 눈에 든다. 해풍에 하늘거리는 춤사위가 정겹다. 앞집 대나무 숲에 바람 스치는 소리가 잦아들더니, 물상들이 선연한 아침 햇살에 모습들을 내놓았다. 빛은 밝음 앞에 존재를 원상으로 돌려주는 후덕함을 지녔다. 하루 중, 빛 앞에 사물들의 민낯을 처음으로 대하는 시간이다.

잠잠하던 바다에 너울 치더니 하얀 괭이갈매기가 떼 지어 난다. 수십 마리가 거대한 무리를 이루되 부딪치지 않는 동행이 신기하기만 하다. 똑같은 숨결로 순간순간 서로의 간극을 조율하는 오르내림에 말을 잃는다. 곡예 같다.

그러고 보니 산, 바다, 물새, 나무, 바람, 그 모든 것들을 겹겹이 싸고도는 아침 시간이 참으로 유여하다.

춥다 힘들다 투덜댔더니, 어느새 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춥고 어둡고 무겁던 겨울의 그 무게와 두께와 부피에서 몸을 빼는 계절이다. 볼을 간질이며 바람이 지난다. 정원의 나무들이 깨어나 귀엣말을 소곤소곤 주고받고 있다. 얼마나 힘겨웠을까.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몸 옴치고 떨던 스산한 겨울의 기억들을 지우고 있을 것이다. 봄의 들머리에서 속정들을 털어놓는 표정들이 밝다. 그들 말소리에 귀 쫑긋 세우니, 아침 햇살에 갓 드러난 나무들의 속살이 만져질 것 같다.

한 발짝 나무들에 다가선다. 수런거리는 그들에게서 물관을 타고 가지로 물 퍼 올리는 소리가 난다. 인제 막 시작했을 첫봄의 수액 작업, 펌프질이 한창이다. 삭정이 같던 나무에 따스한 봄기운이 스미는구나. 검은 가지에 새 움이 트겠구나. 뜸하던 멧새도 오겠구나. 개울 흐르는 소리에 버들개지 눈뜨며 먼빛으로 오는 봄….

그새 달포나 훤히 지등(紙燈)을 달았던 동창 앞 백매, 시든 꽃자리로 누르께한 기운이 짙다. 이제 잎을 내어 추위에 그슬린 검댕 가지들에 연둣빛 옷을 갈아입힐 참이다. 남쪽 울타리 자목련 가지에 꽃망울이 꽤 몽실해졌다. 보름이면 아린이 꽃눈을 열어 부티 난 자줏빛 꽃을 활짝 터트릴 테다.

길사에 받은 화분에서 뜰로 옮겨 심은 보세·교잡 난들은 어느 결에 저리 기세등등해 있는 걸까. 해마다 혹한에 수난이더니, 제법 단련됐는지 올봄엔 내 눈에도 모지락스럽다. 돌 틈에 숨은 녀석은 꽃대를 뽑아 올리느라 바쁜지 눈도 맞추려 않는다.

불끈 솟은 해가 동편 언저리를 아주 벗어났다. 바람 자고 푸근한 날씨다. 성큼 봄이 와 있었구나. 쏴아 온몸으로 끼얹어 오는 봄 냄새, 봄 향기, 봄의 숨소리.

나라 안이 여간 어수선한 게 아니다. 우리 앞으로 기다리던 봄은 왔는데도, 봄이 봄 같지 않다.

대통령 탄핵 시기가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나라가 두 동강 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인용이냐, 기각이냐, 어느 쪽으로 판결이 나든 승복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촛불집회에 태극기집회가 맞불로 타오르고 있으니, 뒷일이 여간 우려되는 게 아니다. 예삿일인가. 계절의 선순환 구조에서 세상 사는 이치를 터득하면 좋으련만. 겨울 뒤로 어김없이 봄은 온다. 순리다.

양극화가 분열을 낳고 불행을 자초할 것은 불 보듯 한 일이다. 끓는 분노를 재우고 반목과 불화를 씻어, 관용과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겨우내 추위를 견뎌 온 나무에 한 수 배울 일이다. 언 땅에서 잠을 깨어 나무들이 입을 모은다. 새로 시작하라고, 다시 오는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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