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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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약관 갓 넘어 양돈업에 도전했다. 예비지식이 없는 데다 자금도 부족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혈기만 앞세운 사업은 오래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늘 가까이했던 가축 사양에 관련된 책들만 남아 실패의 아픔을 더했다.

삼십여 년이 흘렀다. 제주도에서 단 한 명인 해썹(HACCP, 축산물 위해 요소 중점관리제도)강사로 선정되어 교육을 받았다. 전국에서 모인 예비 강사 20여 명은 교육 후에 각 시도에서 강의를 맡게 된다.

교수교육법과 각종 축산에 관한 소정의 연수를 받게 됐다. 축산식품에 대한 상식까지 많은 것을 접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직접 축산업을 하며 전문 서적을 섭렵했던 경험이 도움으로 작용했다. 거기에 더해 유기산 미생물을 활용한 살균법까지 체득했으니 위생교육에도 새로운 식견을 가질 수 있었다.

제주도로 돌아오자 바로 강의가 시작됐다. 축산물 가공 회사 대표, 축협 간부, 양돈장 대표 등 대부분 나이 지긋한 분들이 교육 대상이었다. 내가 배우는 시간이란 생각으로 새로운 지식을 채워 가며 강의를 이어 나갔다.

축산 농가에 미생물을 공급하며 경험은 더 쌓여 갔다. 축산업에 관련된 내용만큼은 지식을 확충할 수 있었다.

한 중앙지에서 뒷고기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관심 끄는 제목에 전면을 두 면이나 할애한 컬러판 기사가 눈에 띈다.

뒷고기는 도축장에서 기술자들이 부위마다 조금씩 빼돌려 용돈 벌이하는 고기란 얘기다. 내가 아는 상식과는 다르기에 이곳저곳 검색을 해 보았다. 대부분이 그런 설명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뜻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렇게 굳어졌는지 모르지만 바로 잡고 싶다. 도둑질한 고기라 해버리면, 뒷고기집이란 간판을 내걸고 식당을 하는 사람들은 도둑질한 고기로 장사하는 고깃집이 돼 버리지 않는가.

예전에는 경조사나 명절이 다가오거나 동네에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도축부터 했다. 정형사가 부위마다 고기를 도려내면, 머리와 뼈, 내장 등 부산물이 남게 된다. 여럿이 고기를 나눠 가지는 과정에서는 무게를 맞추기 위해 조금씩 베어낸 자투리도 생긴다.

작업을 하고 나면 뒤처리를 해야 한다. 남은 사람들은 자투리 고기를 구워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핏물이 든 주변도 정리하고 피로도 푼다.

안주가 모자라면 뼈에 붙은 고기를 발라내기도 하고, 머리 고기에서 조금 떼어내고, 내장도 구워 먹었다. 뒷고기는 그렇게 뒤처리를 하며 구워 먹거나 삶아 먹었던 고기다.

정형하며 뒤에 조금씩 남은 고기들은 각 부위가 섞이게 마련이고, 뼈에 붙었던 고기나 머리 고기는 식감이 더 좋았다. 내장도 고기와는 다른 맛이 있어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 맛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 뒤처리를 거들었다.

입에 맞는 고기를 골라 먹을 수 있는 좋은 안주를 앞에 놓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던 추억이 그리울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사람에게도 그런 추억의 맛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뒷고기집이란 간판을 걸고 장사하는 집도 많은가 보다. 여러 부위를 모아 맛을 볼 수 있는 모둠이란 뜻과 쫄깃한 식감이 맛있는 집이란 뜻을 더하고 싶었을 게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을 표준으로 함도 좋지만, 뜻을 바르게 씀도 중요하다.

겨울비가 내린다. 제주도에도 뒷고기집이 있을까? 소주 한 잔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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