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어찌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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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구/수필가

천미천 냇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찾을 때 마다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늘 소분을 마치고 다리에서 천미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터진소라는 천지소와 마을제를 봉행할 때 사용하는 신성한 곳인 제석물은 휘어진 물줄기와 빽빽하게 자라난 잡목이 얼굴을 가려버렸다. 절경과 신성한 곳을 조사버린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을 탓하며 상처 난 얼굴을 보이기 민망하여 가려버린 모양이다. 다리 끝까지 걸어가며 고개를 돌려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제 모습을 잃어 갈 때 지켜주지도 못하였으면서 새삼스럽게 찾아보는 마음속의 위선이 부끄럽기만 하다.


천미천은 산 동쪽으로 유일하게 발달한 건천이자, 이 섬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길이가 무려 26㎞에 가깝다. 성판악 인근 돌오름에서 발원하여 리송당을 거쳐 성산읍과 표선면 경계를 만들며 웃내끼上川尾, 아랫내끼下川尾, 새내끼新川尾에 생명수를 나눠주며 바다에 닿는다. 내를 경계로 다른 읍면으로 갈리기는 하였으나 예전에는 같은 마을이라 생활권과 정서도 비슷하다.


한라에서 내리는 물은 성읍리에 이르러 영주산 곁에 아름다운 정소암을 만들어 정소암 화전놀이의 무대가 된다. 구렁이가 기어가듯 느릿느릿 구불구불하게 사행천蛇行川을 만들고서야 내 고향에 다다른다. 시건이 물통을 시작으로 기암과 절벽, 폭포, 연못으로 어떻게 그리 수려한 현상을 만들었는지 자연미 절정을 품고 있다. 물이 막히면 기암이요, 그를 넘으면 폭포다. 불과 5km 가량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척박한 농토를 지키며 살라고 신이 주신 걸작임에 분명 하다. 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소들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사람과 우마가 풍족하게 목을 축이는 생명수가 되었고 봄부터 가을까지 빨래와 목욕은 물론 아이들이 놀이터가 되었다.


이러한 내가 없었다면 사람의 거주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뭉건이에 있는 물통은 주변 풍광도 빼어나지만 맛있는 식수를 온전하게 공급해주어 마을 설촌 유래도 뗄 수 없는 곳이다.


내가 길고 수많은 지류가 본류를 만나려 모여든다. 제주도 동녘 지형 중 제주시 삼양동에서 천미천까지는 별반 내닮은 내가 없다. 여러 곳에서 흘러드는 많은 물이 천미로만 모여들어 여름에 폭우가 내리면 물이 넘쳐 수해를 입기는 하였다.


60년대부터 수방공사를 대대적으로 하여 진동산에서부터 바닷가까지 10리도 더 넘는 구간에 물매기라는 것을 만들고 30년 넘게 잘 적응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큰비가 내리자 유속이 느려 윗마을에 약간의 침수가 있었다며 아름다운 이곳을 거대한 도랑으로 만들어 버렸다.


막대한 예산낭비는 말할 것도 없고 잃은 것이 너무 많다. 하늘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였으니 그 첫째요. 농부가 하루 종일 ??작벳에 찌든 소금기를 씻겨주던 장소를 없애버린 게 둘째요. 사시사철 뛰어놀던 장소를 잃은 것은 어찌해야하며, 물통마다 모여 살던 개구리, 뱀장어, 선어를 비롯한 물고기는 간곳이 없고, 여름에서 가을까지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불난디나 잠자리도 후손을 번식시킬 터전을 상실 했다. ??쉬가 뛰어놀며 풀을 뜯던 버덕과 사시장철 마시던 물도 사라져 버렸다. 


기암괴석들은 지금쯤 부잣집 정원에서 터를 잡고 있겠지만 제 자리를 빼앗겼으니 어울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포제 때 여러 어르신과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 창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있으나 지나간 일이고 직접 이해관계가 없어서인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살아가다 두어 세대 지나면 경관이 빼어난 곳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본래부터 그곳 내는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자란 후세들만 남게 될 것 같다.


사람만 변하는 게 아니라 산천도 이리 변할 줄이야. 사시사철 계절 따라 변하던 아름다운 자연과 특히 늦은 봄에 진달래가 만발한 동산 밑에 졸졸 흐르던 물길은 머릿속에만 간직하여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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