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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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시인

우리의 아침은 뉴스로 깨어난다.

 

‘안녕?’ ‘안녕하세요?’로 하루를 연다.

 

안녕한가를 묻는 것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물음이다. 이 인사는 가족을 넘어 이웃에게 전해지는 따뜻한 메시지다. 안녕하다는 소박한 소식이 우리의 삶의 시작이다.

 

뉴스(NEWS)는 동(E)·서(W)·남(S)·북(N)의 조합에서 온 말이니 방방곡곡의 소식을 전하는 것임이 분명한데 요즘 뉴스는 권력 중심의 뉴스가 80%를 넘으니 권력 없는 서민은 보고 듣기가 참 거북하고 안타깝다.

 

청와대(정부)와 국회, 아니면 거기에 가까이 있거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이들의 새까만 소식을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이 아니라 반 년 가까이 억지로 보고 들어야 하는 백성들의 고통은 생각이나 하는지 ‘권력’과 또 다른 권력 ‘언론’이 뒤엉켜 싸우는 것 같은 요즘 현실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다. 그러니 뉴스가 싫다.

 

텔레비전을 켜면 뉴스를 피하느라 ‘여행’, ‘드라마’, ‘먹방’, ‘스포츠’ 채널을 찾는다. 순간적으로 몰입하고 웃고 나면 갑자기 밀려드는 허전함! ‘이게 나라냐’ 가슴이 아프다.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인들은 이 시대의 내노라하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의 만들어내는 쓰레기 같은 뉴스를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언론엔 ‘기다림’이 없다. 기다림에서 오는 여유가 없다. 너무나 선동적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들고 일어서지 않고 차분히 앉아있다. 모두 촛불을 들지도 않고 태극기를 들지도 않는다. 언론과는 정반대로 기다리는 여유를 갖고 있다, 참으로 지혜로운 민족이다.

 

긴 겨울을 참고 기다려 핀 매화향이 짙은 것은 고통에 대한 대가이다. 혹독한 추위를 참고 기다려 새순을 뿜어 올리는 은행나무의 연녹색에 찬탄을 금할 수 없는 것처럼 4월이면 터트리는 벚나무의 연분홍 속삭임을 우리는 묵묵히 기다린다.

 

기다림은 발효되어 맛이 든다.

 

맛이 덜 든 대선 주자들이여! 기다려라. 탄핵이 결정된 후에 나서도 늦지 않다. 묵묵히 준비하는 것이야 바람직한 일이지마는 꼴답지 안은 언론에 춤을 추는 가벼운 모습이라니!

 

차분하게 촛불도 태극기도 들지 않고 기다리는 4천만 이상의 국민들의 부릅뜬 눈을 지켜봐야 활 것이다.

 

기다림은 시(詩)다.

 

“염통에서 나오는 새 소식이 바로 ‘시’”라고 강조한 고은 시인의 말을 곱씹으며 이 답답한 시대에 나는 얼마나 신선하고 살아 있는 시로 새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 아프게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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