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량세태(炎凉世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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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권세가 있을 때는 아부하고, 몰락하면 푸대접하는 게 자고이래(自古以來)의 세상인심이다. 실제 그런 인심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경우다.

반 전 총장은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유엔사무총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그것도 십 년 동안이나 재직하다 임기를 마친 분이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직위에 있었다. 그런 분이 무사히 소임을 다하고 돌아왔으니 금의환향한 것이다.

한데 그렇지 못했다. 귀국하던 날, 인천국제공항이 환영인파로 북적거려 눈길을 끌었지만 종국에 몹시 씁쓸하게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반 전 총장 자신의 선택에 연유했는지 모른다.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며 귀국하기 직전 대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돌아오자마자 거침없는 행보가 이어졌다. 막중한 자리를 내려놓은 뒤의 허탈함이라든지 먼 데서 달려온 노독 따위도 아랑곳 않고 이뤄진 그의 걸음은 종횡무진이었다. 현충원에 참배하고, 천안함 격침 현장을 둘러보고, 팽목항을 찾더니, 영호남 지역을 돌았다. 대선에 뜻을 둔 광폭 행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걸음마다 연일 입방아에 시달렸다. 지하철에서 티켓을 끊으며, 마트에서 외국산 생수를 골라 들었다가, 선산에 성묘하며 퇴주잔을 마셔 버려, 또 요양원에서 노인에게 죽을 떠먹이는 장면이 문제가 되면서 구설수로 여간 부대끼지 않았다. 뒤늦게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게 밝혀졌음에도, 오해가 풀리기는커녕 사람들은 그를 향한 시큰둥한 눈길을 끝내 거두지 않았다.

나름 대선 판도를 그리고 셈하며 부지런히 사람과 만나고 정당을 노크했지만, 그런 그 앞에 험준고령(險峻高嶺)이 막아 나섰다.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설 민심에도 반등 낌새는 없었다. 가파른 길목에서 찾았던 한 정당이 그를 맞이한 목소리는 벽력같았을 것이다. ‘늙으면 가만히 집에 있어야지요,’ 또 어느 곳에선 ‘아무도 꽃가마를 태워 주지 않을 것입니다.’라 했다. 거기다 자신에게 기대어 오리라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이렇다 할 기반 없이 혼자 버거웠던 힘의 한계 그리고 높디높은 현실의 벽. 그는 끝내 꿈을 접었다. 조롱과 비난 속에 그가 물러나는 데 걸린 시간은 3주에 불과했다. ‘인격 살인, 거짓 보도, 정치인에게 국민들이 속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라며 정치권과 언론을 맹비난하는 등 그의 토설(吐說)이 듣기에 처연했다. 말을 아낀 것만 못했던 것 같다. 침묵했으면 좋았을 것을, 듣기 거북했다.

노탐(老貪)이었을까, 의욕이 준비를 앞섰던 걸까. 전직 유엔사무총장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존경심을 그 자신, 허상으로 허물어 버렸다. 시합을 위해 링에 올라 보지도 못한 채 중도 낙마했다. 신기루였다.

그는 관료이지 정치인이 아니었다. 맷집이 약했다. 눈빛이 맑고 웃음이 잔잔한 만큼 그는 순수했다. 참 허탈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실의와 절망을 딛고 나라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 주기를 바라고 싶다.

이제 그는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그를 폄훼하는 너더분한 말 따위는 일절 삼가는 게 도리다. 그게 그분을 소중히 받아들이는 우리의 작은 예의다. ‘교과서에 오르고, 위인전이 나온 것은 어떻게’ 운운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다. 전직만으로도 우리에게 커다란 역사적 자산 아닌가. 오히려 그분이 용기를 내도록 국민적 성원이 따라야 하리라.

일찌감치 꿈을 접은 것은 잘한 일이다. 뒤에, 시종 옅은 웃음을 짓던 부인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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