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명품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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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베일 뒤에서 우리나라 운영과 돈 관리에 입맛대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사람 신발장에 가격이 100만원 단위인 신발들이 가득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의 독재자였던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를 떠올리고, 더 나아가 1980년대 중반 3000 켤레의 구두로 화제가 되었던 그녀가 30년 지난 지금 필리핀 사회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에 기이함도 느꼈을 것이다.

이멜다의 남편 마르코스는 1965년에 대통령이 된 후 21년 장기 집권을 하면서 1972년 계엄령 선포로 헌법을 고치고 물러나지 않았다. 국민의 시위와 저항으로 마르코스 부부는 1986년 2월 22일 미국 공군 헬기를 타고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마르코스는 1989년 그곳에서 72세로 숨졌다.

망명할 때 이멜다는 관저에 3000켤레 가량의 명품 구두와 수 많은 보석, 수천 개의 값 비싼 핸드백과 수천 장의 고급 속옷을 남겨서 충격을 줬다. 이멜다의 부정축재 재산 환수작업을 진행하던 필리핀 정부는 지난해에 이멜다가 망명할 때 압수했던 보석 760여 점을 온라인으로 전시했다. 평가액이 최소 252억 원인 이 보석 전시는 마르코스 일가가 20년간 정부 금고를 털며 일삼았던 부절제와 낭비를 대중에게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한편으로는 독재시절 부패상을 부각시켜 부통령으로 출마했던 마르코스의 아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마르코스의 부정재산 환수 작업 중인 바른정부위원회(PCGG)는 마르코스의 재임 시절 그 가족이 부정부패로 모은 돈으로 반 고흐, 피카소, 모네, 렘브란트 등의 작품을 사들여 최소 300점을 측근들에게 나눠줬는데, 절반은 다시 국고로 회수되고 아직 140여점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이멜다는 망명 생활 5년 만에 귀국해서 2010년에는 하원의원이 되었는데, 독재 치하의 고통과 그 잔재를 청산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시절이 필리핀의 황금기였다고 왜곡하고 있다. 독재자 가족을 지지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계엄령 하에 독재자와 가족, 친구들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대가로 권력을 독점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정치적 부활을 노리는 마르코스 일가는 마르코스의 시신을 사 후 27년 만인 2016년 11월 18일 국립 ‘영웅묘지’에 안장했다.

필리핀 대법원은 마르코스의 영웅묘지 안장을 막아달라는 독재 치하 피해자들의 청원을 기각했다. “독재자를 영웅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독재 치하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다시 고통을 주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인권단체와 대학생 등이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의 9년 동안 계엄령을 지속하며 10만명 넘게 구금, 고문한 마르코스의 시신을 영웅묘지 안장하는 것은 ‘독재자의 미화일 뿐 아니라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에게 부당한 처사’이다. 마르코스가 영웅이라면 수천 명 넘는 피해자들은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마르코스의 시신은 필리핀 역대 대통령이 영웅 묘지 매장을 허용하지 않아 고향 저택에 유리관에 저장 되었었다. 마르코스 일가와 협력했던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면서 마르코스는 제 2 차 세계 대전 재향 군인이니 영웅 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다고 했던 것이다.

뿌리 깊은 마르코스 지지층 덕에 마르코스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59)는 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졌지만 34.6%의 지지를 얻었으며, 딸 마리아 이멜다 마르코스는 아버지 고향 일로코스노르테 주지사로, 아내 이멜다(88)도 이곳에서 재선 하원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런 일을 보면 국민의 피땀을 빨아들이는 거짓 영웅과 번쩍이는 부와 사치 앞에 엎드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고자 간곡히 원하는 ‘자진 노예’들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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