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풍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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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제주에 온 지 어느덧 만 4년을 넘기게 됐다. 처음에는 성산포 오조리, 이어 구좌 종달리 해변에서 두 번을 이사해 1년, 다시 표선으로 옮겨 2년 반을 살다가 신풍리에 터를 잡고 지난해 6월 28일에 입주했다. 그러니까 제주 입도 3년 반 만에 이곳에 둥지를 튼 셈이다.

내가 제주에 내려온 동기는 딱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위암을 만난 것이요, 둘은 제주 올레길의 창시자 서명숙(兀侶) 선생을 만난 것이다. 합기도 체육관을 운영하며 살던 청년이 어느 날 절집에 있었고 머리는 빡빡 깎여 있었다. 세상만사가 인연풍에 있다고 믿는 나는 전생을 이어 금생에도 입산수도의 삶을 살게 됐으니 이보다 큰 행운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위암을 만나 수술까지 하게 되고 휴양처를 찾던 중 서명숙 선생의 ‘제주올레길’에 대한 강의를 듣고 호기심이 작동했다. 거기다 서 선생의 올레길 유혹까지 있었으니 ‘제주올레’와 깊은 인연이 맺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몇 개월 후 광주대 K 교수를 꼬드겨 12박 13일 여정으로 매일 1코스씩 12개 올레길 코스를 걷게 됐다. 광주 대각사로 돌아갔지만 제주 풍광이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급기야 다시 제주에 들어와 마침내 올레길 정코스와 섬으로 이어지는 번외코스 모두 26개 풀코스를 완보하고 올레 사무소에서 수여하는 ‘올레 완주증’을 받았다.

호기심은 다시 한라산 등반으로 이어져 결국 백록담 등정까지 마쳤으며 계속 오름 탐방으로 이어졌고 승마운동까지 병행한 덕택으로 6년 만에 주치의의 항암 처방에서 자유롭게 됐다.

어쩌면 인생은 인연의 바람 따라 왔다가 다시 인연풍으로 돌아가는 여행객이 아닐까 한다. 마치 바람개비가 바람을 만나 돌고 도는 것처럼 다겁생래를 돌고 도는 윤회중생 말이다.

위암은 많은 것을 깨우쳐준 스승이다. 위암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올가미에 묶여 ‘멍에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과 공간에 매이고 쫓기는 삶은 노예인생 외 다름아니다. 물론 현실이라는 동아줄을 끊고 탈출한다는 것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스스로가 그렇게 원하는 자유영혼이 돼 보겠는가. 자유는 우선 떠남이요 버림이다.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고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이제 신풍리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인데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최근에 조성된 신풍리 상동, 그러니까 예전의 밀감밭을 전원택지로 새롭게 개발한 곳이다. 주변이 삼나무로 둘러쳐진 4000여 평의 전원택지에 20여 가구가 들어설 예정인데 현재는 그 절반 정도가 입주했다.

낮이면 자동차 소리도 침묵하고 밤이면 별과 달이 깊은 곳, 바람의 신 영등할망도 잠시 이곳을 잊은 듯 거센 바람도 피해가는 신풍리, 이 마을이 참으로 좋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에겐 인연터가 있다고 한 모양이다. 제주공항도 40여 분이면 충분하고 제주연안터미널도 30여 분이면 족하다. 또 최근에 발표된 신공항이 들어서면 10분대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난 이곳에서 나의 인생 삼모작인 ‘국제명상센터’를 건립하고 세계인들과 만날 생각이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플럼빌리지에 들어가 국제적인 포교 활동을 전개하고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스님이 지구촌을 망라한 전법 활동을 전개하듯이 나 역시 이곳 제주에서 108 퇴허자명상법을 활용해 세계의 지도자들과 함께하는 원력을 발휘해볼 결심이다.

꿈은 꾸는 자의 것이고 이루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 꿈을 중단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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