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관음사, 심신이 지친 중생들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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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안봉려관 스님이 창건...4.3당시 소실 아픔도
▲ 관음사의 상징인 금동 미륵불.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뒤 56억년이 지나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출현하기로 약속돼 있다.

그래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왔던 선조들은 미륵신앙에 의지했다.

과거 들짐승들이 들끓고 안전한 탐방로가 없었던 한라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양식을 구하러 산에 오르기 전 기도가 필요했다. 오래 전부터 한라산 입구인 관음사, 영실, 돈내코에는 미륵보살에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기도처가 있었다.

이 가운데 한라산 해발 650m에 자리한 관음사(觀音寺)는 근대 제주불교의 모태가 됐다.

다른 지방 사찰은 큰스님들의 원력(願力·부처에게 빌어 목적을 이루려는 염력)으로 세워진 반면, 관음사는 제주 출신 비구니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1908년 창건됐다.

해남 대흥사에서 출가한 안봉려관 스님은 제주에 귀향한 후 관음사에 있는 해원굴에서 3년간 관음기도를 올리면서 초가로 된 법당과 요사를 완공했다.

 

▲ 관음사 경내 전경. 맨 왼쪽부터 범정루(종각), 대웅전(가운데 빨간 기와), 지장전.

그러나 제주불교의 태동지는 1948년 4·3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한라산 진출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관음사를 차지하기 위해 토벌대와 무장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전각 전체가 불타 없어지면서 폐사됐다.

도량 주변에는 지금도 경계 참호 등 격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폐허가 된 지 21년이 지난 1969년에 이르러 대웅전 준공을 시작으로 복원이 시작됐다.

불심이 더해지면서 영신전, 해월각, 사천왕문, 일주문, 종각이 차례대로 완공됐다. 이후 삼성각이 건립되는 등 경내 주요 도량은 18곳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천왕문 앞까지 좌우에 석불 108위가 있다. 이 석불은 108번뇌를 상징한다. 경내에는 관음사의 상징인 거대한 금동 미륵불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는 제주의 30곳의 사찰(말사)을 관장하는 제주불교의 중심이 됐다.

4·3으로 파괴된 관음사는 되레 4·3영령들을 치유하고 원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1992년부터 매년 천도재를 봉행하고 있다.

제주불교 순례길 중 하나의 관음사는 방문객들의 심신을 치유하고 안정을 북돋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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