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대가성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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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원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야권 등 사회 일각에선 비난을 퍼붓고 다른 한편에서는 법원에 박수를 보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심사했던 판사는 “뇌물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에 비춰볼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 및 진행 경과 등도 고려했다”고 했다.

간단히 말하면 뇌물의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구속 사유로는 미흡하다는 얘기다. 한국의 법조계 주변에선 꽤나 많이 들어본 소리다. 검은 돈의 유혹에 빠져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바로 그 논리다.

사실 뇌물죄와 관련한 형법 조항부터가 애매모호하다. 뇌물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단지 공직자가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하거나 요구하거나 약속하면 처벌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직자가 취하는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 있는 부당한 이익’으로 뇌물을 정의한 판례가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뇌물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정에서 대가성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건 그런 배경 때문이다. 몇 십억, 몇 백억이 오갔는데도 청탁이나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혹은 단순히 돈을 빌렸을 뿐이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판례의 이상한 첫 단추가 부패 공화국의 틀을 만든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가진 자의 논리, 받는 자의 입장에서 형법 조항을 해석했다는 오해도 나올 만하다. 많은 돈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간다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받는 쪽의 직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직책을 갖고 있지 않은 이에게 그런 돈이 갔겠느냐는 말이다.

금품은 사회통념상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는 게 일반적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하다. 하루 종일 뼈가 빠지게 공사장에서 벽돌을 날라야 일당을 받고, 교실에서 학생들을 앞에서 입이 아프도록 강의를 해야 월급을 받는다. 피땀 어린 노동과 상품의 대가가 돈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간다면 거지에게 던져주는 푼돈이나 자선단체 등에 내는 기부금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액수가 미미하거나 공익성이 전제된다.

보통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면서 살아간다. 돈벌이가 어려운 만큼 남에게 돈을 쉽게 내주지도 않고 누군가로부터 부조를 받으면 그것을 기억했다가 갚으려고 한다. 아이들도 손에 쥐여주면 태도부터 달라지는 게 돈이다.

현실 생활에서 돈의 위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돈을 줄 때 뭔가를 기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드시 말로 다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다 안다.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가 반드시 오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한없이 애타적일 수도 있지만 인간만큼 계산적인 동물도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는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노동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닌 돈이 뇌물의 검은 그림자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제사회에서 부패 공화국의 오명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한국 사회의 지도층은 뇌물을 뇌물로 볼 수 있는 양심의 눈부터 먼저 닦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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