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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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수필가/제주영송학교장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대가 있었다.

 

극동의 약소국. 게다가 반도(半島)라는 지정학적 입지는, 대륙과 해양 강대국들로부터의 침략에 극히 취약했다.

 

그리하여, 호시탐탐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안녕을 위협하는 외세의 겁박에, 국민들은 두려움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어야 했다.

 

대신,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들의 안녕을 위임받은 지도자들은, 민생은 외면한 채 권력을 두고 암투를 벌이느라, 하루해가 짧았다.

 

결국, 의지할 데 없는 국민들의 삶은,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고려 가요 ‘청산별곡’은, 희망의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던 세상을 등지고, 청산을 향해 도피와 은거의 길을 떠났던, 고려 사람들의 슬픈 엘레지였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2017년의 대한민국.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알라’라는 후렴구로 애잔함과 서러움을 더하는 청산별곡이, 뜬금없이 민초들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 1000여 년 전, 고려사회의 데자뷰 앞에서, 역사의 준엄한 교훈을 읽는다.

 

 

제주에 사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새가슴’도, ‘국난’에 요동친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대국 지도자들의 등장. 이른바 ‘스트롱 맨’들의 거침없는 겁박에 숨이 막힌다.

 

특히 그들이 쌓아 올리는 자국이기주의와 보호무역의 장벽을 보며,, 수출로 먹고 사는 조국의 암울한 미래가 기시감(旣視感)으로 펼쳐진다.

 

예측불가의 북한 핵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다는 ‘사드’. 그 방공시스템을 두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위태로운 냉전. 그 위에 찬성과 반대의 치킨 게임을 벌이는 우리 정치인들의 분열을 보면서,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의 무력감을 확인한다.

 

나라 안의 사정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제 양극화와 가계빚. 흙수저 청년들과 와 노인들의 취업난. 인구절벽. 탄핵 정국.....

 

새해의 여명을 깨운 닭의 울음이 아스라한데, 희망의 새벽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청산을 향하며, 고려인들은 노래했다.

 

‘울어라 울어라 새여,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여.’ 삶의 터전을 버리고, 머루랑 다래를 따먹으며 청산에서 연명했던 그들은, 결국 고려로 돌아 오지 못했다.

 

역성혁명으로, 고려의 자리에는 조선이라는 ‘이씨의 나라’가 세워졌다.

 

내우외환의 절대 위기 속에서도, 자중지란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려와 고려인들의 슬픈 운명이었다.

 

올해 대한민국의 세밑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보다 두려움으로 세상의 창밖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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