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과 신구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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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정유년이 밝았다. 새해 달력을 마주하여 음력을 살펴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나는 말이 있었다. ‘손 없는 날’. 한동안 달력에 보이지 않는 말이었다. 손 없는 날은 육지에서 쓰는 한 습속으로 ‘손’은 방위를 지키는 귀신의 일종이다. 손 없는 날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나는 말이었고, 이 말 때문에 문득 친정엄마가 생각이 났다. 친정엄마는 손 없는 날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 손 없는 날이어야 벽에 못을 박거나 물건을 옮기고, 이사도 그 날에 했다.

손 없는 날은 음력으로 끝수가 9와 0이 들어가는 날이다. 예를 들어 9, 10, 19, 20, 29, 30일이다. 이날은 무엇을 해도 동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끝수가 1일, 2일은 동쪽, 3일, 4일은 남쪽, 5일, 6일은 서쪽, 7일, 8일은 북쪽에 손이 있는 날로 해당 일에 물건을 옮기거나 함부로 그곳의 것을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고 하였다.

친정엄마는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삼신할머니에게 꼭 정성을 들여라”, 아이가 태어나서 10살까지는 “아이 생일날 밥그릇에 흰쌀을 담고 촛불을 켜고, 돈과 명주실, 고기를 넣지 않은 미역국과 함께 동쪽에 올려라”고 당부하셨다. 당시 이 말은 필자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필자가 10살 때까지 삼신할머니에게 기원을 드렸다고 한다.

문화란 마치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세습되는가 보다. 세월이 흘러 내가 아들, 딸을 낳고 사는 지금, 나 또한 친정엄마처럼 내 아이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것에 새삼 놀랐다. 아이들이 10살이 되는 해까지 생일이 되면 삼신할머니에게 밥을 올려 기원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화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부모를 닮아가면서 몸에 스며드는 것 같다.

삼신할머니 밥상에는 돈, 쌀, 실, 백설기, 수수팥단지를 올린다. 돈은 삼신할머니의 노잣돈이고, 쌀은 아이가 부자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실과 백설기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이고, 수수팥단지는 ‘살(煞)’풀이로 나쁜 것을 가져가라는 의미이다.

필자가 제주 살이 때 아이들 생일날이 되면 아이를 위해 삼신할머니에게 정성을 들였다. 필자가 삼신할머니 상을 차려 놓은 것을 보고 시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시어머니는 당신도 삼신할머니 상에 인정을 걸어주시고 촛불이 다 탈 때까지 밥상을 지켜주시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은 것 같다. 사실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신에게라도 아이를 위해 기원을 드리는 것이 부모의 진정한 마음이 아니던가.

장소나 지역에 따라서 신들은 많고 역할도 다양하다. 제주에는 ‘신구간(新舊間)’이라는 세시풍속이 있다.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까지를 말한다. 신구간에는 평상시에 고치기 어려웠던 화장실과 집을 수리하거나 이사를 했다. 신구간은 지상에 신들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의 ‘신구간’이 서울의 ‘손 없는 날’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

육지나 제주의 의례가 방법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삶의 내용에 있어서는 터부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우리의 인생에 길흉화복이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은연중 가족을 지켜주는 신격을 찾는지도 모른다. 부정을 타거나 터부를 피하고자 하는 것도 사람들이 만사가 잘 되기를 바라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원초적 본능이 잠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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